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하는 고전] 상인 업신여기던 조선에서 나온 파격 주장 "먼 나라와도 거래해서 백성 재산 늘려야"
입력 : 2026.06.29 03:30
쉽게 읽는 북학의
어떻게 하면 조선이 부강해지고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북학의(北學議)'는 이 질문에 대한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1750~1805)의 대답입니다. 당시 백성의 삶은 날로 궁핍해지고 나라 재정은 고갈돼 가는데, 나랏일 하는 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오랜 제도와 습속(습관이 된 풍속)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박제가는 "현재의 법과 풍속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책 제목 '북학의'는 '북쪽에 있는 나라(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자는 논의'라는 뜻이에요. 평생 네 차례 청나라를 방문했던 박제가는 조선에 들여왔을 때 백성 생활을 편리하게 할 만한 것들을 정리해 기록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수레입니다. 그는 청나라 수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조선에서도 수레의 사용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죠. 각 지역의 특산물들이 다른 지역 물건들과 활발하게 거래돼야 백성의 삶이 나아진다고 본 겁니다.
박제가는 도덕 수양을 중시하기 전에 백성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풍요를 누리는 것, 즉 '이용후생(利用厚生)'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원래 조선에서는 상인과 상업을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청나라에서는 장사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웃기도 했죠. 형편이 나빠져 빌어먹을지언정 일하지 않는 조선 사대부도 많았습니다. 박제가는 조선 사람들이 체면만 중시하고 남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고 비판하면서, 떳떳하게 상업에 종사하고 부(富)를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건이 있어도 함부로 쓰지 않는 검소함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물건이 있어야 검소함을 실천할 수 있는 법입니다. 박제가는 조선에는 물건 자체가 부족하거나 없다고 지적합니다. 좋은 물건을 많이 써야 물건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고 백성들의 생활도 윤택해집니다. 반대로 물건을 이용하지 않으면 해당 물건은 물론,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다른 물건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죠. 그래서 박제가는 허울뿐인 검소함 탓에 조선이 쇠퇴할 것이란 위기의식도 가졌습니다.
조선이 통상하는 나라는 가까운 청나라, 일본 정도였습니다. 그마저도 제한적이었죠. 박제가는 먼 지역과도 통상해야 나라에 쓸 만한 물건이 늘어나고 나라의 부도 커진다고 봤습니다. 이를 위해 해운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박제가는 '북학의'를 정조 임금에게 올리면서 사대부 유생들을 비판했습니다.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조선 사회를 지배하던 이들에게 박제가는 눈엣가시 같았습니다. 정조는 박제가의 개혁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를 격려했는데, 정조가 1800년 세상을 떠나자 박제가에 대한 핍박도 본격적으로 커졌습니다. 결국 유배까지 당했다가 1805년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부강한 나라 조선을 향한 개혁의 꿈도 스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