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오랫동안 인류의 '기본값'이었던 남성… '젠더 데이터 공백' 메워야 한다 말하죠
입력 : 2026.06.18 03:30
보이지 않는 여자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실내의 차가운 에어컨 바람 때문에 담요를 챙기는 여성이 많습니다. 휴대전화를 한 손으로 만지다 자꾸 떨어뜨리거나, 안전벨트·마스크가 몸이나 얼굴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여성도 많죠. '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나' '내 손이 작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기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이런 '불편'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인류가 오랫동안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여겨왔다고 설명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 남성의 몸이 기준이 됐고, 도시와 교통·의학 제도를 설계할 때 남성의 생활방식을 떠올려 왔습니다. 그 결과 여성의 몸과 경험에 관한 자료가 제대로 모이지 않았고, 사회 곳곳에 빈틈이 생겼습니다. 저자는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고 부릅니다. 책은 여성의 경험이 빠진 세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차례로 보여줍니다.
젠더 데이터 공백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1960년대 표준 사무실 온도를 정할 때 기준이 된 건 몸무게 70㎏인 40세 남성의 신체였어요. 남성은 근육량이 많아 신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여성보다 더 많고, 그만큼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킵니다. 또 오랫동안 자동차 안전 실험에도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한 충돌 실험 인형이 쓰였습니다. 이에 같은 사고를 당해도 여성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위험이 더 높습니다.
이 책은 남성을 공격하거나 성별 갈등을 부추기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가 여성을 일부러 배제하려는 악의보다 오래된 무심함에서 생겼다고 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주로 남성들이 있었고, 그간 여성의 필요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거예요.
스웨덴 도시 칼스코가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눈이 온 뒤 발생한 사고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자동차 사고보다 보행자가 다치는 일이 더 많았고,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자동차 대신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아이 등하교나 장보기 등으로 동선이 복잡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시는 자동차 도로보다 보행로와 자전거도로의 눈을 먼저 치우도록 순서를 바꿨습니다. 그 결과 사고가 줄었고 의료 비용도 덩달아 감소했습니다.
'빠진 데이터'를 채우는 일은 모두에게 이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1300개가 넘는 자료와 연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평균'과 '표준'을 다시 보게 합니다. 여성에 관한 데이터를 채우는 일은 한쪽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불완전했던 기준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모두를 위한 세상'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고 사회를 바꿔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