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발전·분단·자유… 도시 대표하는 노래엔 역사 담겼죠
입력 : 2026.06.17 03:30
도시 상징 곡
일본 가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를 쓴 하시모토 준이 8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이달 초 전해졌어요. 요코하마는 일본 수도인 도쿄 근교의 항구 도시인데요. 1968년 발표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지금까지도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로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일본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항구의 야경을 떠올린다고 해요.
이처럼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저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노래를 갖고 있어요. 한순간 인기를 끌다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대를 이어 시민들과 함께한 노래도 많습니다. 공연에서 노래를 들으며 함께 즐거워하고, 옛 추억에 빠지기도 하죠. 노래가 이들에겐 '정체성'인 셈입니다. 그럼 오늘은 세계 대표적 도시들을 상징하는 노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요코하마, 개항의 역사
일본 가수 이시다 아유미(1948~2025)가 부른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2009년 요코하마항 개항 15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 1위에 올랐죠. '당신과 함께라 행복해요' '여느 때처럼 사랑의 말을 불러봐요'라는 낭만적인 가사가 나오는데요. 하시모토 준은 요코하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과, 프랑스 도시 칸의 밤 풍경을 떠올리며 작사했다 해요. 그래서 노래 속 '블루 라이트'는 단순히 푸른 불빛을 뜻하는 게 아니라, 바다와 항구, 이국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요코하마의 밤을 상징하는 표현이랍니다. 그렇다면 요코하마는 어떻게 이런 도시가 됐을까요?
요코하마의 역사는 일본의 개항(항구를 열어 외국 선박 출입을 허가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당시 증기로 움직이는 신식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했답니다. 이에 일본은 여러 항구를 열어주게 됐는데, 요코하마는 1859년 개항했지요. 개항으로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비단, 차(茶) 등이 요코하마를 통해 외국으로 나갔어요. 외국 상인, 외교관도 몰려들었어요. 미국·유럽인들은 이곳에 서양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요코하마의 야마테 언덕에는 서양식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데, 이 때문에 요코하마는 일본 도시 중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죠. 요코하마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일본이 세계와 만난 장소이자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었던 겁니다.
요코하마는 밤이 되면 항구와 바다가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들어요. 많은 사람이 이 풍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떠올립니다.
이처럼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저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노래를 갖고 있어요. 한순간 인기를 끌다 사라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대를 이어 시민들과 함께한 노래도 많습니다. 공연에서 노래를 들으며 함께 즐거워하고, 옛 추억에 빠지기도 하죠. 노래가 이들에겐 '정체성'인 셈입니다. 그럼 오늘은 세계 대표적 도시들을 상징하는 노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요코하마, 개항의 역사
일본 가수 이시다 아유미(1948~2025)가 부른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2009년 요코하마항 개항 15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 1위에 올랐죠. '당신과 함께라 행복해요' '여느 때처럼 사랑의 말을 불러봐요'라는 낭만적인 가사가 나오는데요. 하시모토 준은 요코하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과, 프랑스 도시 칸의 밤 풍경을 떠올리며 작사했다 해요. 그래서 노래 속 '블루 라이트'는 단순히 푸른 불빛을 뜻하는 게 아니라, 바다와 항구, 이국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요코하마의 밤을 상징하는 표현이랍니다. 그렇다면 요코하마는 어떻게 이런 도시가 됐을까요?
요코하마의 역사는 일본의 개항(항구를 열어 외국 선박 출입을 허가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당시 증기로 움직이는 신식 군함을 이끌고 일본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했답니다. 이에 일본은 여러 항구를 열어주게 됐는데, 요코하마는 1859년 개항했지요. 개항으로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비단, 차(茶) 등이 요코하마를 통해 외국으로 나갔어요. 외국 상인, 외교관도 몰려들었어요. 미국·유럽인들은 이곳에 서양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지금도 요코하마의 야마테 언덕에는 서양식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데, 이 때문에 요코하마는 일본 도시 중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죠. 요코하마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일본이 세계와 만난 장소이자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었던 겁니다.
요코하마는 밤이 되면 항구와 바다가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들어요. 많은 사람이 이 풍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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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의 마천루 모습. 가장 높게 치솟은 건물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뉴욕을 상징하는 노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엔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가사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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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월스트리트역 벽 타일에 그려진 성벽. 과거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벽이 있던 자리가 지금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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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사람들이 장벽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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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독일 우표에 실린 파울 링케. /위키피디아
2009년 제이지와 얼리샤 키스가 발표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는 뉴욕을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예요.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에선 네가 못할 게 없어'라는 가사가 나오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성공과 희망을 찾아 모인, 뉴욕의 역사와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26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뉴욕 맨해튼섬에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당시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마을 북쪽에 성벽(Wall)을 쌓았는데, 이 성벽이 있던 자리가 바로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되었어요.
하지만 뉴암스테르담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며 이 지역도 영국 손에 넘어갔어요. 이후 도시 이름은 영국 요크(York) 공작의 이름을 따 뉴욕(New York)으로 바뀌었죠. 18세기 들어 뉴욕은 본격적으로 성장했어요. 곡물과 고기를 수출하고, 설탕·코코아를 들여오는 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조선·목공·금융·보험업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19~20세기 뉴욕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어요. 유럽·아시아에서 수백만 명이 뉴욕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성공을 위해 새 터전을 찾은 사람들이죠. 이들은 공장 노동자, 상인, 예술가, 기업가가 됐습니다. 뉴욕은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세계적인 도시가 됐어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엔 '화려한 빛들은 네게 영감을 줄 거야'라는 가사가 있어요. 뉴욕을 자유와 가능성의 공간으로 표현하며, 뉴욕을 찾은 이들의 희망과 도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역사와 함께한 베를린의 노래
독일 베를린을 대표하는 노래는 파울 링케(1866~1946)가 작곡한 '베를린의 공기(Berliner Luft)'지요. 파울 링케는 '베를린 오페레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곡가입니다. 오페레타는 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루며 중간에 연극처럼 대사를 하는 부분도 있는 '가벼운 오페라'를 가리키죠. 그는 1899년 오페레타 '루나 부인'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 속 행진곡인 '베를린의 공기'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이 노래는 밝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인데요. 당시 베를린 시민들은 이 노래가 활기찬 도시 베를린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대요.
당시 베를린은 급격히 성장 중이었거든요. 1871년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면서 베를린은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됐죠. 공장이 들어서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는 냉전의 상징이 됐지요. 독일이 통일된 1990년이 돼서야 베를린은 다시 하나의 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 베를린은 독일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부활할 수 있었답니다.
이처럼 도시가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는 동안에도 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던 노래가 '베를린의 공기'입니다. 지금도 매년 여름 베를린의 야외 공연장에서 열리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시즌 마지막 공연은 거의 예외 없이 이 곡으로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이 노래를 통해 베를린의 역사를 떠올리고, 도시의 활력과 시민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