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저음 맡던 '조연' 첼로, 비발디·바흐 거쳐 독주 악기 됐죠

입력 : 2026.06.15 03:30

첼로

지난달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리나라의 첼리스트(첼로 연주자) 김태연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벨기에의 왕 알베르 1세의 왕비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딴 이 대회는 매년 5월 열리는데, 흔히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3대 콩쿠르'로 불리죠.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첼로 각 부문이 한 해씩 돌아가면서 열리는데요. 2022년에는 첼리스트 최하영이 우승했고, 4년 만에 올해 다시 열린 첼로 대회에서 첼리스트 김태연이 준우승이라는 멋진 성적을 낸 겁니다.

이처럼 첼로는 오늘날엔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과 함께 콩쿠르의 주인공 대접을 받고 있는데요. 사실 옛날에 첼로는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다른 악기들을 도왔던 '조연'이었답니다. 첼로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첼로라는 악기의 매력과 흥미로운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이올린보다 8배 무거운 악기

첼로는 줄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바이올린과 구조가 같은 '바이올린족(族)' 악기인데, 낮은 음을 담당하죠. 전체 길이는 120㎝로 바이올린의 2배이고, 무게는 약 4㎏으로 바이올린의 8배에 달합니다. 18세기 초 이탈리아 악기 장인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현대 첼로의 표준 모양을 마련했대요.

첼로는 우아하고 깊은 중저음으로 사랑받습니다. 그러면서도 음역(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의 범위)이 네 옥타브가 넘을 만큼 넓습니다. 그래서 첼로 악보에는 낮은음자리표, 가온음자리표, 높은음자리표가 모두 사용되죠. 음역이 이토록 넓어 첼로만으로 작은 악단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첼로 주자 12명이 연주하는 '베를린 필 12첼리스트'가 대표적입니다. 이 단체는 1972년 결성돼 반세기 넘도록 사랑받고 있어요.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김태연. 한국 첼리스트는 4년 전 최하영에 이어 또다시 이 콩쿠르에서 입상했어요.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김태연. 한국 첼리스트는 4년 전 최하영에 이어 또다시 이 콩쿠르에서 입상했어요.
세계적인 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첼로 주자들로 구성된 ‘베를린 필 12첼리스트’의 공연 장면.
세계적인 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첼로 주자들로 구성된 ‘베를린 필 12첼리스트’의 공연 장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 음악의 ‘구약 성서’로 불려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 음악의 ‘구약 성서’로 불려요.
첼로의 앞면과 옆면. 아래쪽 끝에 붙어 있는 ‘엔드핀’은 바닥에 첼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 연주자들이 더 수월하게 연주하도록 한답니다. /연합뉴스·인스타그램·위키피디아
첼로의 앞면과 옆면. 아래쪽 끝에 붙어 있는 ‘엔드핀’은 바닥에 첼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 연주자들이 더 수월하게 연주하도록 한답니다. /연합뉴스·인스타그램·위키피디아
바흐는 '구약', 베토벤은 '신약'

이처럼 첼로는 많은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지만 17세기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조연'에 그쳤습니다. 17세기 유럽 음악은 주연 악기들이 연주하는 동안 일부 악기가 저음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계속 저음(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 주법을 전통적으로 사용했어요. 이때 첼로가 바순, 쳄발로와 함께 저음을 내는 조연 역할을 맡았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1600~1750년대)가 끝날 무렵, 첼로는 '근사한 독주 악기'로 극적인 변신을 합니다. 작곡가들이 첼로의 매력에 주목하고 첼로가 독주 악기로 두드러질 수 있는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가 대표적이에요. 그는 '첼로 협주곡'을 30여 편이나 작곡했어요. 협주곡은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면서 독주 악기의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한 음악이에요. 훗날 음악가들은 비발디가 반주 악기에 불과했던 첼로를 독주 악기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답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와 도메니코 가브리엘리(미상~1690)는 독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했어요. 그중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여섯 곡은 첼로 음악의 걸작이랍니다. 이 음악들은 첼로만으로 음악 전체의 흐름을 이끌고 듣는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동시에 연주자의 기량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도 해요.

바흐에 이어 첼로의 매력을 뽐낸 곡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첼로 소나타' 다섯 곡입니다. 이 곡들은 첼로가 피아노에 맞서면서도 한편으로 조화를 이뤄, 당당한 독주 악기로서의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아요. 첼리스트들에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구약 성서'로 여겨진다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신약 성서'로 비유됩니다. 바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통해 첼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베토벤은 첼로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완벽히 실현했다는 것이죠. 성경에서 구약에 등장한 예언이 신약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빗댄 거예요.

200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걸작

19세기에는 여러 걸작이 쏟아졌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인 멘델스존, 쇼팽, 슈만, 드보르자크 등이 첼로 곡을 썼어요. 차이콥스키가 독주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이때 탄생했지요.

20세기에는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진한 낭만이 담긴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는데요. 그는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이 왜 바이올린 소나타는 써주지 않느냐고 투정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더 훌륭한 악기인 첼로가 있는데, 굳이 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의 '첼로 협주곡' 두 곡은 오늘날 세계 공연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과거엔 수난을 겪었답니다. '협주곡 1번'은 악보가 사라져 200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1961년 체코에서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극적으로 발견됐어요. 하이든협회가 이를 공식 인정하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거예요. '협주곡 2번'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가 1951년에야 하이든의 자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진짜 주인을 찾았습니다.

여성도 연주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오늘날 첼로 연주자들은 악기 아래쪽에 달린 쇠막대인 '엔드핀(endpin)'으로 악기를 지탱합니다. 하지만 엔드핀이 없던 시절엔 연주자가 의자에 앉은 채 무릎 사이에 첼로를 끼우고 연주해야 했죠. 그러다 보면 온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첼로는 주로 남성 연주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답니다. 하지만 19세기 엔드핀이 발명되면서 연주 자세가 편해졌어요. 엔드핀이 악기를 지탱해주니 힘을 덜 쓰게 됐고 손을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죠. 이는 여성 첼리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 예술의전당 사장에 취임한 여성 지휘자 장한나도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를 빛낸 신동 첼리스트였지요.
김지현 작가·'클래식을 읽는 시간' 저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