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 하는 고전] 아랍인 고아 소년 '모모'에게 사랑이란? 서로를 버리지 않고 보듬는 마음이에요
입력 : 2026.06.11 03:30
자기 앞의 생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7층에서 늙은 유대인 여성 로자 아줌마와 아랍인 소년 모모가 함께 살아갑니다. 로자 아줌마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지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있고, 모모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예요. 에밀 아자르가 쓴 소설 '자기 앞의 생'은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애틋한 일상을 통해,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주인공 모모는 아주 어릴 때 이곳에 맡겨졌답니다. 로자 아줌마는 거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몰래 낳은 아이들을 돈을 받고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 아줌마는 병들고 몸집이 커져 숨을 쌕쌕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겨운 처지가 됐죠. 상처투성이인 두 사람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세상 그 무엇보다 끈끈한 가족이자 유일한 '내 편'이 됩니다.
상처받지 않으려 일부러 영악한 척하는 소년은, 사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묻는 외로운 아이입니다. 모모는 낡은 우산에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아낍니다. 병든 로자 아줌마를 대하는 마음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모모에게 사랑이란 상대의 가치를 따져 묻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함부로 버리려는 존재를 끝까지 아끼고 보듬는 일이죠.
로자 아줌마는 병세가 깊어지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에 수용되지 않을까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의료 기계에 의존한 채로 자신의 생명이 강제로 연장될까 봐서였죠. 모모는 그런 아줌마의 뜻을 존중해 그녀를 비밀 피난처였던 낡은 지하실에 숨겨줍니다. 보호받아야 할 열네 살 소년이 도리어 죽어가는 어른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어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는 모습은 역설적이면서도 눈물겹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쓴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이 사실 당대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 로맹 가리의 가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모든 명예를 거머쥔 그는 이름값에 얽매인 평론가들의 편견을 깨고 오직 작품 자체로만 평가받으려 새로운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그는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프랑스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일화는 소설의 주제와도 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가 이름표를 벗고 다시 태어나려 했듯, 소설 속 인물들도 인종·종교·나이·직업이라는 겉치레 너머에서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합니다.
모모는 덮쳐오는 생의 무게에 주저앉는 대신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단호하게 다짐합니다. "사랑해야 한다." 이 투박하고도 절실한 선언은 팍팍한 세상에서 마음이 헐어버린 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자기 앞의 생'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게 만드는 진짜 힘은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서로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