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인구 500만의 나라, '중동 중재자'라 불려요

입력 : 2026.06.10 03:30

오만

최근 국제 뉴스에 중동 국가인 '오만'이 종종 등장합니다. 오만은 그동안 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이란 두 나라 사이에서 줄곧 중립을 취해왔는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만에 이란과 단교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요.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 보고 있는 오만은 오랜 기간 국제 사회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온 국가랍니다. 과거에도 갈등을 빚는 미국과 이란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여러 차례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인구도 500만명 남짓한 나라 오만이 어떻게 중동 지역에서 대표적인 중재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오만의 역사와 오랜 기간 쌓아온 외교 전통 속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해양 강국

오늘날 중동의 주요 석유 생산국인 오만은 과거 인도양 무역을 주도하던 해양 강국이었습니다. 아라비아반도 동남쪽 끝에서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수천 년 전부터 상인과 선원이 모여드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어요.

그중에서도 오만의 수도이자 항구 도시인 무스카트가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어요. 그러자 무스카트를 탐내는 나라가 생겨났어요. 1507년 유럽의 해양 강국이었던 포르투갈은 인도양 무역을 독점하려고 무스카트를 점령했어요. 하지만 오만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결국 1650년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냈답니다. 그리고 오만은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바다 곳곳으로 진출했어요. 18세기에는 동아프리카 해안까지 장악하는 거대한 해양 제국이 됐죠. 이 때문에 지금도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에서 오만의 지배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요. 오만이 지은 아랍식 건축물도 남아있죠.

과거 중동에 있는 많은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가 됐을 때도 오만은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당시 영국이 인도로 향하는 바닷길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1798년 영국과 오만은 우호 조약을 맺었어요. 영국 상인을 보호해주는 대신 오만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었죠. 1891년 결국 영국의 보호령(자국의 보호를 받는 지역)이 됐지만 주변의 다른 국가들처럼 완전히 식민지가 되진 않았고 높은 자율성을 유지했습니다. 오만의 술탄(왕)은 자리를 지켰고, 스스로 행정 제도를 운영하면서 군대도 보유할 수 있었죠. 이처럼 오만은 강대국과 협력하면서도 독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고, 이런 전통이 오만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답니다.

중동 지역 지도입니다.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어요.
중동 지역 지도입니다.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어요.
17세기 포르투갈 관리 안토니오 보카로가 만든 지도책에 실린 무스카트. 무스카트는 오만의 수도입니다.
17세기 포르투갈 관리 안토니오 보카로가 만든 지도책에 실린 무스카트. 무스카트는 오만의 수도입니다.
1983년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오만 술탄을 위한 국빈 만찬 행사 기념 사진이에요. 왼쪽부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술탄, 낸시 레이건 여사.
1983년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오만 술탄을 위한 국빈 만찬 행사 기념 사진이에요. 왼쪽부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술탄, 낸시 레이건 여사.
오만 수도 무스카트의 중심 도로인 술탄 카부스 거리예요. 이 거리 이름은 오만의 현대화를 이끈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에서 따왔습니다. /위키피디아•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오만 수도 무스카트의 중심 도로인 술탄 카부스 거리예요. 이 거리 이름은 오만의 현대화를 이끈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에서 따왔습니다. /위키피디아•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화합 강조하는 '이바디파'의 나라

오만 외교를 이해하려면 종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대부분 중동 국가에선 이슬람의 주요 분파인 수니파 또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오만은 다릅니다. 많은 오만 국민이 '이바디파'인데, 이바디파는 이슬람 전체에선 1%도 안 되는 소수 분파예요.

이바디파는 한쪽으로 크게 쏠리는 극단주의를 경계하면서, 역사적으로 공동체의 화합과 절제를 중시해 온 분파랍니다. 실제로 오만에도 수니파와 시아파가 모두 존재하는데 서로 큰 갈등 없이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러한 오만의 종교적 배경은 외교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중심 국가이고, 이란은 시아파의 중심 국가입니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경쟁해 왔어요. 하지만 오만은 어느 한쪽 진영에 완전히 속하지 않았죠.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이란과도 외교적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2017년 중동의 카타르는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수니파 중심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역시 수니파가 다수인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카타르를 고립시키려고 카타르와 외교적 관계를 끊는 단교 사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때 오만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편 가르기보다 대화를 우선하는 오만 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경제·외교 발전 이끈 카부스 술탄

오늘날 오만을 만든 인물로는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을 꼽을 수 있어요. 그는 1970년부터 2020년 사망할 때까지 약 50년 동안 오만을 이끌었습니다. 직전 술탄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지 않아 현대식 도로는 거의 없었고 학교와 병원도 부족했어요. 새 술탄에 오른 카부스는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대대적인 현대화 정책을 추진했어요. 전국에 도로와 공항을 건설했고, 교육과 의료 체계를 정비했어요. 오늘날 오만이 중동에서 안정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한 건 카부스의 현대화 정책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경제 개발과 더불어 카부스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히는 건 바로 외교입니다. 그는 오만이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이웃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이어가는 한편, 유엔, 아랍연맹, 걸프협력회의 같은 국제기구에도 가입했어요. 아랍 국가 중에서는 서구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친서방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쳤는데요. 미국과는 1980년 군사협정을 맺었어요. 미국이 오만의 군사 시설을 사용하는 걸 허용하면서 안보 협력을 유지한 거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스라엘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죠.

세계가 찾는 대화의 장소

오만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과정에서 국제 사회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0년대 초반 미국과 이란은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남들의 눈에 띄는 공개적인 협상이 어려웠어요. 이때 오만이 비밀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2013년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미국이 이란과 비밀리에 여러 차례 만나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협상을 하도록 했죠. 오만의 중재 덕분에 양국은 신뢰를 쌓기 시작했어요. 결국 2015년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고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뤄졌는데, 오만의 중재가 중요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오만은 이처럼 가깝고 먼 나라 모두와 대화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많은 국가의 신뢰를 받아왔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