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우리말 나비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나비밖에 몰랐던 석주명 이야기

입력 : 2026.06.08 03:30

석주명 평전

[재밌다, 이 책] 우리말 나비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나비밖에 몰랐던 석주명 이야기
이병철 지음|출판사 그물코|가격 1만8000원

"이것이 내 생명입니다. 이게 없어지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한국 나비 채집과 연구에 바친 나비 분류학자 석주명(1908~1950)이 한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1931년부터 전국에서 채집한 나비들의 지역 분포를 표시한 지도 500여 장입니다. '한국산 접류(나비) 분포도'라고 하지요.

석주명은 일본 유학 후 1931년 모교인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943년부터는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 수원농사시험장, 국립과학박물관 등에서 일했습니다. 석주명은 교사 시절 개성 사람들 사이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소문났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자루를 매단 장대와 채집통을 든 채 나비를 좇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지요. 그가 약에 쓰려고 나비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습니다.

석주명은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나비를 약 75만마리나 채집했고, 각 나비의 형질을 측정하고 통계를 냈습니다. 그는 외국인들, 특히 일본인들이 한국 나비 연구에서 범한 오류를 찾아 바로잡았습니다. 예컨대 같은 종인데도 형질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종으로 분류된 나비가 많았습니다. 석주명은 그렇게 같은 종인데 다른 종으로 여겨져 이름까지 달라진 한국 나비 844개를 찾아낸 뒤 종 분류에서 없앴습니다.

석주명은 직접 분류한 조선 나비 255종을 다룬 '조선산 접류 총목록'이 1940년에 영어로 출간되면서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 나비에 관한 모든 연구는 이 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미국 유학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석주명은 우리 땅을 중심으로 한 학문을 정리하는 게 먼저라고 답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후진 국가라 할지라도, 우리 땅의 자료로 계통을 세우면 그것으로 선진 국가의 국민들을 가르칠 수 있다."

도시처녀나비, 높은산지옥나비, 별박이세줄나비, 꼬마표범나비, 흰세줄나비, 눈많은그늘나비, 산제비나비, 흰뱀눈나비, 번개오색나비… 석주명이 분류 체계를 세우고 한글 이름을 정해 1947년 조선생물학회 심사를 통과한 한국 나비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우리말로 학문을 한 선구자로도 평가받습니다.

석주명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연구했고 제자들에게 "토막 시간까지 공부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도 연구와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던 석주명은 어떤 나라를 꿈꿨을까요? 평양 출신인 그는 남침하여 서울을 점령한 북한 공산군에게 심문받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과학밖에 세상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소.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자를 위해주는 나라를 바랄 뿐이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