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잠을 줄이는 것은 '느린 안락사', 뇌 기능 파괴하고 수명 갉아먹죠

입력 : 2026.06.04 03:30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재밌다, 이 책] 잠을 줄이는 것은 '느린 안락사', 뇌 기능 파괴하고 수명 갉아먹죠
매슈 워커 지음 l 이한음 옮김 l 출판사 열린책들 l 가격 2만3000원

밤 11시. 숙제도 아직 남았고 재미있는 영상도 하나 더 보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보고 자야지' 하다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죠. 다음 날 아침,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가며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주말에 몰아서 자면 되지, 뭐."

하지만 세계적인 수면 전문가인 저자는 이 익숙한 생각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밀린 잠은 나중에 은행 빚 갚듯 한꺼번에 갚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저자는 잠을 줄이는 행위가 뇌 기능을 파괴하고 수명을 갉아먹는 "느린 형태의 자기 안락사"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흔히 깨어 있는 시간을 '생산적인 시간', 자는 시간을 '버려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봐도 잠은 이상한 행동입니다. 자는 동안엔 먹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어 천적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니까요.

그럼에도 수많은 동물이 잠을 자는 이유는 수면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잠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암 발병률이 두 배로 치솟고 치매 위험이 커져요. 또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이 고장 나 평소 같으면 웃어넘길 작은 일에도 쉽게 폭발하게 됩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시험 기간이면 잠부터 줄여 공부 시간을 늘리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잠을 줄여서 공부하는 것은 도리어 공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깨어 있는 동안 벼락치기로 머릿속에 밀어 넣은 지식은 금방 지워지는 '임시 보관함'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깊은 잠에 푹 빠져들 때 비로소 이 지식들이 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겨져 진짜 내 실력이 되지요.

나아가 꿈을 꾸는 잠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날카로운 감정을 다독이는 야간 심리 치료사 역할을 한답니다. 흩어져 있던 지식들을 이어 붙여 번뜩이는 창의성 무대가 되기도 하죠.

물론 10대들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온전히 의지 부족이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만은 아닙니다. 사춘기가 되면 몸속 생체 시계가 뒤로 밀리면서, 밤이 왔음을 알리는 멜라토닌의 분비 시점도 어른보다 늦어집니다. 그래서 저자는 청소년에게 밤 10시에 자라고 하는 것은 어른에게 저녁 7시에 자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화면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뇌가 아직 낮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유전적 시차가 있는 데다, 디지털 기기들마저 우리의 수면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충분히 자는 일이야말로 더 잘 배우고, 더 잘 느끼고,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한 가장 훌륭한 선택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잠자리에 드는 일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잠은 하루의 끝에 밀려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일의 나를 준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졸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야 합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