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1882년 美 통상 조약 앞두고 급하게 탄생… 태극 방향·괘 배치순서 계속 바뀌었어요

입력 : 2026.06.02 03:30

태극기

오는 6일은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에 대한 묵념을 할 땐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가 빠질 수 없지요. 태극기는 다급한 사정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탄생하게 됐어요. 조선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군대 깃발이 존재했지,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國旗)는 없었어요. 그러다 다른 나라와 외교적으로 마주할 일이 생기면서 갑자기 국기가 필요해졌죠. 1882년 5월 미국과의 통상 조약을 앞두고 통역과 외교 업무를 담당하던 관리인 이응준이 군기를 바탕으로 태극 문양 등이 들어간 국기를 그렸고, 같은 해 9월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 사절 박영효가 이를 재차 손봤습니다. 이듬해 고종이 이를 정식 국기로 공포하게 됩니다.

[디자인·건축 이야기] 1882년 美 통상 조약 앞두고 급하게 탄생… 태극 방향·괘 배치순서 계속 바뀌었어요
태극기에는 우주의 법칙이 담겼다는 말이 있어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 중 하나인 '주역'의 핵심을 시각화했기 때문입니다. '주역'에서는 태극이 음(陰)과 양(陽)을 낳으면서 세상이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태극기 중앙을 보면 태극 문양 내부의 파란 부분이 음, 붉은 부분이 양이 되어 서로 맞물려 돌며 조화를 이루고 있죠. 더불어 대각선 방향으로 사방에 배치한 건(☰)·곤(☷)·감(☵)·리(☲) 등 4괘는 각각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해요.

그런데 태극기는 국기로 큰 중요성을 갖는 만큼 디자인이 오랜 시간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했어요. 태극의 크기, 방향, 음양이 조화되는 모습이 달라졌고, 건곤감리 4괘의 순서도 계속 바뀌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 중인 주이 태극기(1884)와 한국에 있는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1890)를 비교해 보면 한 나라의 국기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예요.

3·1 운동 때 사용한 태극기로 유명한 진관사 태극기(1919)는 일장기 위에 먹을 칠해 태극과 4괘를 구현한 것이 감동적인데요. 데니 태극기와는 태극이 도는 방향이 반대죠. 괘 순서도 서로 다르게 배치됐고요.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 의지를 담은 글귀와 서명을 써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에게 선물한 김구 서명문 태극기(1941)는 아예 붉은 부분과 파란 부분이 세로를 기준으로 나뉘었어요. 이렇게 애매하게 변형되던 태극기 디자인이 통일된 건 해방 후인 1949년이었어요. 태극의 크기, 음양의 방향, 괘의 순서가 확정됐죠.

문제는 색깔이었어요. 색상을 단순히 진홍색(빨강)과 아청색(파랑)으로만 규정해 놓아서, 태극기마다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어요. 1997년에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색 표시 방식으로 정확한 표준 색도를 지정해 고시했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금의 태극기 모양과 색깔 모두 명확해진 게 사실 30년밖에 안 됐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워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