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하는 고전] 300년 전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높은 교육열이 매우 인상적이었대요
입력 : 2026.06.01 03:30
다시 읽는 하멜표류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1630~1692)이 쓴 '하멜 표류기'는 하멜과 동료 선원들이 조선과 일본에 머무는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요구하기 위해, 회사에 제출한 보고서입니다. 본래 제목은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발 나가사키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입니다. 1653년 7월 30일, 선원 64명이 탄 스페르베르호는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다 태풍을 만나 난파당했습니다.
이 중 살아남은 36명은 8월 16일 조선의 제주도에 상륙했지요. 이들이 처음 본 현지 주민들은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말총으로 짠 모자(갓)를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선 1627년에 표류해 한양에 살고 있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한국 이름 박연)가 통역을 해줬습니다. 선원들은 한양으로 옮겨져 벨테브레이처럼 조선의 훈련도감 소속 군인이 됐습니다.
1655년 3월, 이들 중 두 명이 청나라에서 온 사신 앞에 뛰어들어 집으로 보내 달라 애원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 두 명은 감옥에서 죽었고 나머지 선원들은 전라도 여러 곳으로 유배당했습니다. 나라에서 곡식을 줬지만 나무를 해서 내다 팔거나 솜을 구해 팔았고 구걸도 자주 했습니다. 하멜 일행 중 에보켄은 "조선 사람들은 온순하고 너그러우며 인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8명이 조선 현종 7년 1666년 9월 4일에 배를 타고 조선을 벗어나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습니다. 조선에 표류한 지 13년 만이었지요. 2년 뒤 1668년에는 조선 정부가 7명을 나가사키로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조선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선원이 많았습니다. 하멜은 조선에 오래 살면서 겪고 본 일을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유럽인입니다. 그의 눈에는 조선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을까요?
먼저, 높은 교육열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자식이 아주 어릴 때부터 선생을 두어 글공부를 시킨다." 책과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조선인들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필사본이나 인쇄된 책을 많이 갖고 있다, 책을 매우 소중하게 여겨서 여러 도시에 안전하게 보관하여 지식을 지킨다."
하멜은 조선이 인삼과 은을 중국에 갖고 가서 비단을 사 가지고 오며, 인삼은 청나라에 공물로 보내기도 하고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도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닫힌 나라였습니다. 많은 나라 이름을 말해 줘도 조선인들은 믿지 않고 세계에 12개 왕국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에 관한 조선인들의 지식은 샴(태국) 이상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세계와 교역하며 발전한 열린 나라입니다. 300년 전 하멜이 겪은 현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지요. '하멜 표류기'는 우리가 미처 못 본 우리의 과거와 장단점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