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에는 양반·여성 업고 시냇물 건너는 직업 있었대요

입력 : 2026.05.28 03:30

사라진 이색 직업

AI(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노동 시장에서 구조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어요. 회계사나 변호사 등 엘리트 전문직 인력의 신입 채용이 줄고 있는데, AI가 초급 인력의 역할을 대체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렇듯 세상이 변화하면서 기존의 직업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선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봐도 과거엔 꼭 필요했지만 산업화가 이뤄진 현재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도 많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색 직업'이라 할 수 있겠죠.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사라진 직업

혹시 '장빙업자(藏氷業者)'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얼음을 떠서 곳간에 저장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이야 냉장고에 냉동실이 있어서 집에서도 언제든지 얼음을 만들 수 있지만, 예전에는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여름에 더위를 식히거나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얼음은 필요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을까요?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강에서 얼음을 뜯어낸 뒤 얼음 창고인 빙고에 보관해 썼습니다. 빙고에서는 환기구를 통해 더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게 하고, 볏짚 같은 단열재를 사용해 내부 온도를 낮춰 얼음이 녹지 않게 했습니다.

현재도 서울 용산구에 남아 있는 '동빙고' '서빙고' 같은 지명이 이 빙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 시대 빙고는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었어요.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민간에서도 얼음 채취를 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들이 바로 장빙업자였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한강에서 얼음을 걷어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월천(越川)꾼'이라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보통 옛날에 깊은 강을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야 했죠. 그런데 수심이 얕은 개천이나 여울은 어떻게 건넜을까요?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건너면 되지 않았겠느냐 싶겠지만, 체면을 중시했던 양반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여성의 경우는 남에게 맨발을 보이는 것이 금기시됐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업거나 목말을 태워 건네주고 품삯을 받는 사람들을 월천꾼이라 했습니다. 체격과 힘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다리가 놓여 하천을 건너는 데 별 불편이 없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죠.

한강철교 아래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입니다. 톱으로 두꺼운 얼음을 잘라내고, 큰 집게로 끌어올려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장면이에요. /서울역사박물관
한강철교 아래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입니다. 톱으로 두꺼운 얼음을 잘라내고, 큰 집게로 끌어올려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장면이에요. /서울역사박물관
조선 말기 화가 김윤보가 그린 ‘금부난장’. 여러 사람이 매로 때리는 난장 형벌을 보여주는 풍속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말기 화가 김윤보가 그린 ‘금부난장’. 여러 사람이 매로 때리는 난장 형벌을 보여주는 풍속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원 김홍도의 ‘담배 썰기’. 왼쪽 아래 전기수로 추정되는 사람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의 ‘담배 썰기’. 왼쪽 아래 전기수로 추정되는 사람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도의 변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제도가 바뀌어서 없어진 직업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무과(무관을 뽑던 과거 시험)에 급제한 군관은 당시 최전방이었던 함경도 같은 곳에서 1년 동안 의무 복무를 해야 했어요. 이들을 '출신군관'이라 했는데요. 출신군관의 주거와 식사, 군복의 세탁·수선 같은 잡다한 일을 해 주는 가사도우미를 '방직기(房直妓)'나 '방직비(房直婢)'라 했습니다. 방직이란 관아에 속한 심부름꾼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을 기생이 맡으면 방직기, 여종이 맡으면 방직비라 불렀습니다.

남이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는 것으로 돈을 버는 '매품팔이'라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흥부전'에 잠깐 나오기도 하는데, 곤장을 잘못 맞으면 죽거나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했죠.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부정부패 상황의 일이었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과거 시험장에서 대신 답안지를 써 주는 대리 시험 전문가 '거벽(巨擘)'도 있었는데, 지금 같으면 정말 큰일 날 일이죠.

매우 끔찍한 직업으로는 '망나니'가 있었습니다. 사형수를 죽이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인데 주로 흉악범 중에서 선발됐고, 1896년 참수형 제도가 폐지되며 사라졌습니다.

생태·환경과 문화가 바뀌면서 없어지기도

생태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자취를 감춘 직업도 있죠. 혹시 '호환'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를 말하는 것인데, 예전 우리나라는 맹수인 호랑이가 무척 많이 살아 사람들이 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한양 인왕산 서쪽에 있는 무악재를 넘는 사람들은 10명씩 모인 뒤 꽹과리를 치며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호랑이가 나타날까 경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는 특수 부대원인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뽑았는데 세조 때는 200명을 뽑았다고 합니다. 착호갑사가 되려면 담력이 세고 무예가 뛰어나야 했어요. 180보(약 220m) 밖에서 나무 활을 쏴 한 발 이상 명중시켜야 했고, 양손에 각각 50근(약 30㎏)의 물건을 들고 한 번에 100보(약 120m) 이상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더 이상 서식하지 않는 지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돼 버렸습니다.

20세기 이후 문화가 달라져서 사라진 직업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례식에서 우는 소리가 클수록 훌륭한 장례식이라고 봤기 때문에, 왕실이나 사대부 집안에서는 장례식에서 대신 울어 주는 여성을 고용했는데 이들을 '곡비(哭婢)'라고 했습니다.

사라진 듯 여전히 남은 직업들

없어진 듯 보이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명맥을 잇는 직업도 있습니다. 18세기 조선에선 소설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 여러 곳 생겼고, 일반 백성을 위해 소설책을 실감 나게 읽어 주는 '전기수(傳奇叟)'가 출현했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일쑤였는데, 궁금해진 사람들이 돈을 던지면 그제야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전기수는 사라졌지만 지금은 오디오북과 AI 음성 서비스 등이 그 역할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죠.

전통 혼례에서 신부의 단장을 비롯한 여러 일을 도와주던 여성을 '수모(手母)'라고 했는데요. 혼례를 총괄하던 전문 직업인 셈이었어요. 오늘날에는 웨딩 플래너, 폐백 도우미,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으로 그 역할이 분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을 받고 말을 빌려주던 '세마(貰馬)꾼'은 지금의 렌터카 업자로 계승됐다고 할 수 있겠죠. 옛날엔 말을 빌려 타더라도 경마잡이가 고삐를 잡고 안내해야 했기 때문에 그다지 빨리 가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