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케첩의 원조는 중국 생선 소스였대요

입력 : 2026.05.21 03:30

음식의 언어

[재밌다, 이 책] 케첩의 원조는 중국 생선 소스였대요
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옮김|출판사 어크로스|가격 1만7000원

배달 앱에서 메뉴 고를 때를 떠올려 보세요. '수제' '정통' '바삭' '풍미' 같은 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지요.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음식에 붙은 말들을 함께 고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음식 이름부터 메뉴판에 적힌 문장, 맛집 리뷰에 쓰인 말까지 두루 살피며 '먹는 일'이 '말하는 일'과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아주 익숙하게 여긴 음식들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어요. 예를 들어 케첩은 원래 토마토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중국 푸젠성 지방의 발효 생선 소스였습니다. 대항해 시대 무역과 변형을 거치며 오늘날의 토마토케첩으로 바뀐 거죠. 감자와 생선을 튀겨 만든 영국 국민 음식 피시앤드칩스도 유대인 이주민의 생선 튀김 조리법에 유럽 토박이 재료가 아니던 감자가 만나 완성됐고, 남미의 해산물 요리인 세비체 역시 아랍권을 거쳐 전해진 조리법이 현지 식재료와 결합한 결과물입니다. 전통 음식처럼 보이는 한 접시 안에도 사실은 이주와 무역, 문화의 뒤섞임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대부분의 요리는 문화가 만나는 경계에서 태어난다는 뜻이죠.

저자의 시선은 과거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메뉴판과 포장지, 온라인 리뷰도 날카롭게 읽어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메뉴에 적힌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도 올라간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똑같은 요리라도 더 길고 세련된 말로 설명하면 비싸도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된다는 거죠. 값비싼 과자 포장지에 '천연' '전통' 같은 말이 유난히 많은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맛뿐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나의 이미지까지 함께 소비합니다. "사람들이 먹는 것은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뿐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를 반영한다"라는 저자의 말처럼요.

음식에 대한 말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맛집 리뷰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말할 때는 비슷한 단어를 반복하지만, 나쁜 경험을 묘사할 때는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한 표현을 씁니다. 단순히 맛이 없었다는 말 대신 '눅눅했다' '비렸다' '무시당한 기분이었다'처럼 세세하게 적는 것이죠. 인간이 기쁜 일보다 불쾌한 상황을 더 예민하게 기억하고 자세히 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맛집 리뷰를 분석해보면 인간이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에 끌리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의 언어'는 음식책이면서 역사책이고 심리학책이며 인문학책이기도 합니다. 무심코 집어 드는 케첩 한 병, 메뉴판 한 장에도 세계사와 인간의 욕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으니까요. 오늘 저녁 식탁 앞에 앉게 된다면 음식의 맛만 음미하지 말고, 그 음식과 관련된 말도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평범한 한 끼가 훨씬 깊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뀌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