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고구려·백제·신라 순으로 삼국시대 '불교' 들어왔어요

입력 : 2026.05.21 03:30

불교의 전래

오는 24일 일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에요.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인 이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랍니다. 음력으로 4월 8일이기 때문에 '초파일(初八日)'로도 부르죠. 초파일은 여덟째 날이란 뜻이어서 '4월 초파일'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석가모니의 탄생일을 가리키게 됐답니다.

불교는 웬만한 우리나라 역사극에 절과 스님이 꼭 나올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주요 종교였는데요. 오늘은 어떻게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는지 그 연원을 따져 보겠습니다.

인도에서 중앙아시아 거쳐 중국으로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은 현재 네팔의 영토인 룸비니라는 곳이지만, 불교의 근원지는 크게 인도라고 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로 전파됐고, 다시 한(漢)나라 때 중국으로 전해졌어요. 대략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무렵이죠.

중국은 4세기부터 북방 민족이 화북 지역을 점령하고 왕조를 세운 '오(5)호십육(16)국 시대'가 펼쳐졌고, 남쪽에선 동진, 송(유송), 제, 양, 진의 한족(漢族) 왕조가 잇달아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이 설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고구려는 당시 중국의 북쪽에 있는 왕조에서, 백제는 남쪽에 있는 왕조에서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에요. 삼국 모두 공식 전래 시점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민간에 유입됐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 세 나라 모두 불교를 공식화한 것은 율령(律令·형률과 법령) 체제의 정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호류지의 금당 벽화입니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호류지의 금당 벽화입니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충남 부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충남 부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경북 경주 백률사에 있던 이차돈 순교비.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가유산청
경북 경주 백률사에 있던 이차돈 순교비.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가유산청
첫 공식 전래는 전진→고구려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였어요. 오호십육국 중 북쪽의 왕조였던 전진이 순도라는 승려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에 보내면서 불교가 전래됐다는 거예요. 이후에 아도라는 승려가 또 고구려에 왔습니다. 소수림왕은 '초문사'와 '이불란사' 두 절을 수도 국내성에 짓고 순도와 아도를 각각 주지로 있게 했대요.

이후 광개토대왕 때인 392년 평양에 절 아홉 곳을 지었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 시기의 연호(임금이 즉위한 해에 붙이는 칭호)는 영락(永樂)이었는데 '영원히 지속되는 즐거움'이란 뜻으로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해요. 이후 장수왕의 첩자로 백제 개로왕에게 접근했던 도림, 신라로 망명해 팔관회(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식)를 전했다는 혜량 같은 고구려 승려들이 역사에 나타납니다. 고구려 승려이자 화가인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 유명한 호류지(法隆寺)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 말기엔 연개소문이 귀족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도교를 받드는 대신 불교를 탄압하는 일도 있었어요.

동진→백제→일본으로 불교 전파됐죠

불교가 고구려로 공식 전래된 지 12년 뒤, 백제에도 전래됩니다. 고구려와는 달리, 중국의 남쪽 왕조인 동진에서 왔다고 해요. 서기 384년 백제 침류왕 때였습니다. 침류왕은 백제의 대표적 군주인 근초고왕의 손자예요.

침류왕 때 불교 전파 임무를 맡은 동진의 승려는 인도 승려 마라난타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백제는 인도에서 직접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당시 마라난타의 법문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마치 왕명을 받고 모이는 것 같았다고 해요.

침류왕의 아들 아신왕은 즉위(392년)하면서 '불법을 숭상해 복을 구하라'는 명을 내렸답니다. 백성에게 적극적으로 불교 신앙을 권한 셈이죠. 고구려와의 전쟁을 앞두고 불교를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기도 해요. 백제가 고구려에 패해 한강 유역을 잃고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불교는 백제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승려인 겸익은 526년(성왕 4년) 우리나라 승려 최초로 인도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지금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방 하나에 유물 한 가지만 전시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1993년 발견된 '명품 중의 명품'인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예요. 이 문화유산이 발견된 장소는 백제의 왕실 사찰이 있던 곳으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었습니다.

백제 불교의 역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사실입니다. 552년(성왕 30년), 백제 관등 중 2품에 해당하는 달솔 벼슬의 노리사치계가 임금의 명을 받은 뒤 불상과 불경을 지니고 일본에 건너가서 불교를 소개했습니다. 일본 불교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늦게 공인된 신라, 국가 통합의 밑거름

불교가 정착되기까지 곡절이 가장 많았던 나라는 삼국 중 신라였습니다. 19대 임금 눌지마립간(재위 417~458년)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가 신라로 왔고, 그를 위해 절을 지어 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것은 이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528년 법흥왕 때였어요.

법흥왕이 불교를 국가 종교로 받아들이고 흥륜사라는 사찰을 세우려 하자, 외래 종교인 불교를 배척하는 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다고 합니다. 이때 왕의 신하인 이차돈이 나서서 '흥륜사 건립 공사 책임을 나에게 물어달라'며 자청해 처형을 당했대요. 그런데 이차돈의 목을 베니 흰 젖 같은 피가 한 길이나 솟구쳐 올랐고, 하늘은 어두워지고 땅은 진동했으며 사방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비로운 그의 죽음을 계기로 결국 신라에선 불교가 공인되고, 이차돈은 한국사 최초의 불교 순교자로 기록됩니다. 다만 이를 법흥왕이 불교 공인을 위해 벌인 일종의 '정치 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후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불교를 정치에 밀착시켜 국가 발전에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아요. 7세기에 들어서면 진평왕 때 원광법사는 청소년 수련 단체인 화랑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는 지침 '세속오계'를 내렸고, 선덕여왕은 황룡사 구층탑을 세웠죠. 모두 불교가 신라의 정신적 통합에 영향을 끼친 사례랍니다. 원효와 의상 같은 한국사 대표 고승(高僧)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의 신라였어요.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