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720만달러에 산 알래스카, 처음엔 '바보짓' 비난받았죠
입력 : 2026.05.20 03:30
미국 주(州)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州·state)로 편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어요. 실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이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베네수엘라가 40조달러(약 5경원) 규모의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과거에도 자기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을 미국 주로 편입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거대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1776년 독립 당시 미국은 동부 해안에 있는 13개의 주로 출발했어요. 이후 전쟁·매입·협상·병합 등을 통해 오늘날의 영토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순조롭게 미국의 주가 된 것은 아니었고 어떤 곳은 지금도 '미국 땅이지만 주는 아닌(준주·準州)'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해요. 오늘은 미국 영토 확장의 역사 속 흥미로운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은 과거에도 자기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을 미국 주로 편입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거대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1776년 독립 당시 미국은 동부 해안에 있는 13개의 주로 출발했어요. 이후 전쟁·매입·협상·병합 등을 통해 오늘날의 영토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순조롭게 미국의 주가 된 것은 아니었고 어떤 곳은 지금도 '미국 땅이지만 주는 아닌(준주·準州)'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해요. 오늘은 미국 영토 확장의 역사 속 흥미로운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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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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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여러 주(州) 등을 표시한 지도예요.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거대한 땅 알래스카를 사들였습니다. 알래스카는 미국 북쪽에 있는 캐나다를 지나야 있는 지역이에요. 가격은 약 720만달러였어요. 알래스카의 면적을 고려하면 당시 매우 싼 가격이었답니다. 1㎢당 약 5달러를 지불한 셈이죠.
19세기 전반에 러시아는 아메리카 대륙에 알래스카를 비롯해 여러 식민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러시아는 동유럽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크림전쟁(1853~1856)에서 참패한 후 막대한 재정난을 겪게 됐고, 알래스카까지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미국에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러시아의 알래스카 매각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였는데요. 당시 미국 언론과 시민 일부는 이 거래를 비웃었지요. '쓸모없는 얼음 덩어리를 왜 샀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슈어드의 바보짓(Seward's Folly)' 혹은 '슈어드의 얼음상자(Seward's Icebox)'라고 조롱했습니다. 알래스카는 춥고 황량해 농사도 어렵고 사람이 살기 힘든 땅처럼 보였거든요.
하지만 1890년대 알래스카 남동부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며 수만 명의 사람이 금을 찾아 몰려들었어요. 이후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알래스카는 미국의 중요한 에너지 자원의 보고가 됐습니다.
또한 알래스카는 냉전 시기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알래스카와 러시아 사이 가장 가까운 곳은 약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 알래스카는 소련을 감시하는 미군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답니다.
알래스카 지역은 1912년에는 알래스카 준주가 됐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권은 없는 등 제한이 있었어요. 알래스카 주민들은 '세금은 내는데 정치적 권리가 없다'며 주 승격 운동을 벌였고, 결국 1959년에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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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7년 미국과 러시아가 알래스카 매매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왼쪽에서 둘째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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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모 전투에서 텍사스 반군이 멕시코군에 패배하고 있어요.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
오늘날 텍사스는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거대한 주입니다. 그런데 원래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1821년 멕시코는 스페인에서 독립했는데요. 멕시코 정부는 인구가 적은 북부 국경 지역을 개발하려고 미국인 이주를 허용했습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이 들어왔다는 점이에요. 1834년에는 3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텍사스에 이주했고, 멕시코 주민은 8000여 명에 불과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텍사스 지역에는 영어를 쓰고 노예제를 지지하는 미국계 주민이 늘어났습니다. 반면 멕시코 정부는 노예제를 금지하고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려 했어요. 결국 양측 갈등은 커졌고 1835년 10월 텍사스의 독립을 주장하는 '텍사스 혁명'이 시작됩니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바로 '알라모 전투'예요. 텍사스 반군은 멕시코군에 맞서 알라모 요새를 방어했지만 13일간의 포위 끝에 결국 거의 전멸했습니다. 약 200명이 희생됐지요. 군사적으로는 멕시코의 승리였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텍사스 독립 세력의 상징이 됐답니다. 텍사스인들은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고 외치며 결집했고 결국 1836년 4월 멕시코군을 격파해 독립에 성공했어요.
이후 텍사스는 약 10년 동안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로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텍사스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1845년 텍사스는 결국 미국에 편입됐고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습니다.
하지만 멕시코는 텍사스를 여전히 자기 영토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1846년 미국과 멕시코는 전쟁을 벌였고 미국이 승리해 오늘날의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 등도 주로 편입했습니다.
과거 왕국이었던 유일한 주 '하와이'
푸른 바다의 휴양지로 유명한 하와이는 원래 독립 국가였습니다. 1778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유럽인 중 최초로 하와이에 도착했어요. 하와이 원주민 부족의 추장이었던 카메하메하 1세는 영국 문물을 받아들여 하와이를 통일하고 왕국을 세웠습니다.
19세기에는 하와이에서 미국 이민자들의 사탕수수 농장이 성장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습니다. 그러다 1893년 이들이 미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 왕정을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합니다. 결국 이듬해 하와이 이주 백인들이 하와이 공화국을 수립했어요. 하와이 원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1898년 미국령이 됐지요.
그러던 중 미국·스페인 전쟁(1898)이 발발해 미국이 필리핀을 얻게 되면서 태평양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특히 미국은 태평양에서 해군 기지를 확보하려 했고 하와이의 진주만은 매우 중요한 군사 거점이 됐답니다. 하와이는 1900년 미국의 준주가 됐죠. 1959년에 정식으로 미국의 50번째 주가 됐는데요. 하와이 주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답니다. 그래서 하와이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과거 왕국이었던 역사를 가진 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