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문종·효종 모두 종기로 사망했어요
입력 : 2026.05.19 03:30
종기
종기는 모낭염이라고도 불려요. 사람의 털이 자라는 곳이 바로 모낭인데, 모낭에 각종 세균이 감염돼 염증과 고름이 생기는 증상이 바로 모낭염이에요. 현대에는 고름을 검사해 어떤 균에 감염된 것인지 파악한 후, 항균제와 항생제로 치료해요. 하지만 과거에는 종기가 자연적으로 치료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째는 등의 치료밖에 할 수 없었죠.
문종은 재위 기간이 2년 4개월로 매우 짧아요. 문종이 세자 시절이던 36세에 등에 지름 약 30㎝짜리 종기가 났어요. 문종의 아버지였던 세종은 아들의 종기가 좀처럼 낫지 않자 여러 신하를 전국에 보내 기도를 올리도록 했어요. 죄인들을 사면해 하늘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세자의 종기를 치료하고자 했어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종기가 나았지만, 약 한 달 뒤 허리 쪽에 15㎝ 종기가 또 생겼어요. 그런데 그즈음 세종의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셨기 때문에 세자는 아버지의 장례와 왕위 계승으로 종기 치료에 전념할 수가 없었죠. 문종은 재위 후 약 2년 동안 종기로 시달렸어요. 신하들이 나서서 정무보다 치료에 전념해 달라고 호소할 정도였죠. 그렇게 치료를 했지만 결국 종기 때문에 39세에 생을 마감했어요.
효종은 재위 10년째에 이마에 종기가 생겼어요. 종기가 부어올라 눈을 뜨기 어려울 지경이 되자, 효종은 의관들에게 얼른 종기를 터트려 고름을 짜내라고 했죠. 그러다 침을 잘 놓는 의관 신가귀가 궁 밖에서 요양을 하다가 왕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입궐을 하게 돼요. 효종은 신가귀에게 종기에 침을 놓으라고 명령했어요. 다른 의관들은 고름을 빼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또 건드리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만류했죠. 그러나 효종은 신가귀가 온 김에 빨리 종기의 뿌리를 뽑고 싶었어요. 왕의 명령에 따라 신가귀는 종기에 침을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피가 멎지 않았어요. 결국 효종은 창백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했죠.
이 외에도 여러 왕이 종기를 앓았고, 종기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1485년 성종은 치종청(治腫廳)을 설치해 종기 치료에 힘썼어요. 특히 평생을 종기에 시달렸던 정조 때는 종기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관 피재길이 유명했어요. 그는 약재를 써서 종기를 떼어 내는 고약을 잘 만들었어요. 정조는 피재길을 궁으로 불렀고, 피재길의 고약으로 정조의 종기가 낫자 피재길은 벼슬을 받았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