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위인과 정신건강]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인간은 선하다"고 믿었어요

입력 : 2026.05.12 03:30

장 자크 루소와 의심증

"인간은 본래 선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사진) 하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말이에요. 그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나쁜 존재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상처받으며 변해 간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더 나은 사회와 교육을 꿈꿨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교육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철학자가 됐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인간의 선함을 믿었던 이 철학자가 정작 살면서 가장 두려워한 게 바로 사람이었답니다.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어요. 하지만 그의 삶은 출발부터 평온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어요. 어린 루소는 한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죠. 누군가에게 온전히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죠. 이런 경험은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쉽게 믿지 못하고,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만들었어요.

[위인과 정신건강]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인간은 선하다"고 믿었어요
루소는 젊은 시절부터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며 자기 생각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에밀', '사회계약론' 같은 책을 통해 유럽을 뒤흔드는 사상가가 됐지요. 아이들은 억지로 틀에 맞추기보다 자연스럽게 자라야 한다고 했고,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시민이라고 말했어요.

지금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당시에는 꽤 위험하고 불편한 주장이었어요. 그의 책은 금지됐고, 여러 곳에서 비난과 압박을 받았어요. 루소는 쫓기듯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고,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루소는 사람들의 시선을 점점 더 힘겹게 느꼈어요. 친구의 말 한마디도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렸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거나 모함한다고 의심하는 일이 잦아졌지요. 가까웠던 철학자들과도 사이가 멀어졌고,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을 택했어요. 그는 자신의 억울함과 두려움을 긴 글과 편지에 담아 남겼어요. 마치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 불안을 누가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오래전 인물에게 오늘날의 진단명을 그대로 붙이기는 어려워요. 분명한 것은, 루소가 말년에 심한 불안과 의심 속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죠. 세상이 나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은 사람을 더욱 외롭게 만들지요.

그런데도 루소는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들 때문에 불안해졌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더 나은 인간 사회를 꿈꾸었어요. 아이는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어떻게 가능한지를 끝까지 고민했지요. 마음은 불안했지만, 생각은 늘 인간을 향해 있었던 거예요.

우리는 흔히 위대한 사상가라면 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루소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불안할 수 있고,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준 사람도 마음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어요. 루소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끝까지 믿으려 한 사람이었어요. 그의 흔들리는 삶은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줍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는 일과 닿아 있다는 걸요.

이헌정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