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기원전 3세기부터 연주된 '건반 악기'… 중세 교회음악과 결합하며 확산됐죠

입력 : 2026.05.12 03:30

풍금

충남 공주 제일교회 건물에는 과거 외국인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들여온 풍금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있습니다.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의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가 이 교회를 다닐 때도 있었다고 해요. 최근 이 풍금 해체 작업을 통해 1915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풍금<사진>은 건반 악기 중 오르간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오르간은 건반을 누르면 공기가 관(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관을 울리거나, 파이프 대신 얇은 금속판(리드)을 떨리게 해 소리를 내는 악기랍니다. 피아노처럼 망치가 줄을 치는 방식과 달라요. 우리나라에서 풍금은 주로 리드 오르간의 한 종류인 '하모니움'을 의미해요.

[사소한 역사] 기원전 3세기부터 연주된 '건반 악기'… 중세 교회음악과 결합하며 확산됐죠
오르간이란 악기 역시 매우 오랜 역사를 지녔답니다. 관련 기록으로 무려 기원전 3세기의 것이 남아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인물인 크테시비우스가 수력 오르간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오르간은 물의 힘으로 공기압을 유지해 파이프에 바람을 보내는 장치였는데, 손으로 판을 열고 닫으면 파이프가 울려 소리가 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에서도 오르간이 연주됐다고 전해집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나라의 종교로 정해지면서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확산했어요. 초기 교회는 오르간을 이용한 교회 음악 연주에 소극적이었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점차 오르간이 교회 음악과 결합했습니다.

풍금의 본격적 발전은 19세기에 이루어졌는데요. 페달 두 개를 양발로 밟아 공기 공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됐고, 1830년대에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자 아리스티드 카바이예콜이 개량한 풍금이 근대 풍금 제작을 선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르간이 종교 음악에서 주로 사용됐기 때문에, 아시아에 풍금이 전해진 것도 종교와 관련 있어요. 16세기 유럽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요. 이후 가톨릭 교회가 해외 선교를 통해 종교개혁에 대응하면서 오르간을 포함한 서양 문물이 중국·일본 등에 전파됐습니다.

당시 중국에 방문한 조선 사신들 덕분에 조선에도 오르간의 존재가 알려졌어요. 조선의 실학자인 홍대용은 '담헌집'에서 베이징의 성당에 설치된 풍금에 대해 기록했고,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중국에서 풍금 연주를 들은 감상이 기록돼 있어요.

풍금이 실제로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896년쯤으로 추정됩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왔다고 해요. '황성신문'에 따르면, 1909년에는 관립학교에서도 풍금 연주가 이뤄졌고, 각종 음악회에서 풍금을 연주했다고 해요. 최근에는 피아노나 전자 오르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풍금을 보기 힘들어졌죠. 지금은 한국의 근대를 상징하는 역사적 악기로 남게 됐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교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