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옛 효자들, 부모님 위해 얼음 깨고 잉어 잡았죠
입력 : 2026.05.07 03:30
효자
5월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는 가정의 달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했던 덕목 중 하나는 바로 '효'였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을 바치고, 집안에서는 효도를 해야 한다고 여겨졌죠. '효(孝)'라는 한자를 상형 문자로 풀이하면,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는 늙은 부모를 젊은 자식이 업고 있는 모양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부모님께 어떤 방식으로 효도를 실천했을까요? 오늘은 효의 의미와 함께 역사 속 다양한 효 관련 이야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호랑이와 싸운 효자
효의 기본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구해 오는 것 자체를 큰 효도로 생각했는데요. 중국의 전설 속 효자인 왕상은 병든 어머니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꽁꽁 언 강 위에 엎드려 얼음을 녹인 뒤 잉어를 잡아 왔다고 합니다. 또 다른 효자 맹종은 아픈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자 눈 덮인 대밭에서 울며 기도했고, 그 마음에 하늘이 감동한 듯 죽순이 솟아났다고 전해집니다. 겨울에는 잉어나 죽순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만큼 부모를 향한 정성과 간절함을 보여 주는 행동이었지요.
고려 시대의 효자 최루백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최루백은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목숨을 잃자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호랑이를 쫓아가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정성껏 장사를 지냈고,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머물며 무덤을 지켰습니다. 이를 '시묘살이'라고 하는데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식이 무덤 근처에서 지내며 슬픔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풍습이에요. 당시 사람들은 최루백의 행동을 매우 큰 효행으로 여기고, 이를 널리 칭송했답니다.
호랑이와 싸운 효자
효의 기본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드시고 싶어 하는 음식을 구해 오는 것 자체를 큰 효도로 생각했는데요. 중국의 전설 속 효자인 왕상은 병든 어머니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꽁꽁 언 강 위에 엎드려 얼음을 녹인 뒤 잉어를 잡아 왔다고 합니다. 또 다른 효자 맹종은 아픈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자 눈 덮인 대밭에서 울며 기도했고, 그 마음에 하늘이 감동한 듯 죽순이 솟아났다고 전해집니다. 겨울에는 잉어나 죽순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만큼 부모를 향한 정성과 간절함을 보여 주는 행동이었지요.
고려 시대의 효자 최루백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최루백은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목숨을 잃자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호랑이를 쫓아가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정성껏 장사를 지냈고,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머물며 무덤을 지켰습니다. 이를 '시묘살이'라고 하는데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식이 무덤 근처에서 지내며 슬픔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풍습이에요. 당시 사람들은 최루백의 행동을 매우 큰 효행으로 여기고, 이를 널리 칭송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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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시대 화가 이도영의 ‘왕상부빙도’입니다. 왕상이 병든 어머니를 위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았다는 중국 전설을 묘사한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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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루백의 이야기가 나오는 ‘삼강행실도’. 최루백 앞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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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가 그린 ‘석진단지’. 유석진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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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때 어려운 살림에도 노모를 극진히 모신 성풍세라는 사람을 기리는 효자비예요. 경북 고령에 있습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국립한글박물관·국가유산청
옛사람들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며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정성껏 돌봤습니다. '몸과 머리카락,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란 의미인데요. 혹여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을 깎더라도 조심스럽게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게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효자들은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모든 약도 듣지 않게 되면, 어떤 자식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부모님에게 피를 먹이는 '단지(斷指)'나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처럼 달여 드리는 '할고(割股)'를 행하기도 했어요. 옛사람들은 자식의 몸과 마음이 부모와 깊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자신의 살이나 피에는 특별한 정성과 생명력이 담겨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이 위독할 때 자식의 피를 먹이거나 살을 달여 드리면 병이 낫거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지요.
병든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하던 조선 시대의 하급 관리 유석진은 온갖 약을 구해 써 보았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몹시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산 사람의 뼈와 피를 섞어 먹이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그는 왼손 약지를 잘라 피를 내어 아버지에게 드렸다고 합니다. 이후 아버지의 병세가 좋아졌다고 전해져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같은 방법들이 정말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갈 겁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병의 원인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식들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런 행동을 선택했던 겁니다. 단지와 할고는 치료법이라기보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식이 할 수 있었던 최후의 수단이자 간절한 사랑의 표현이었던 셈이죠.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손가락을 자른 효자들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집니다. 1434년 세종은 이런 효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삼강행실도'를 만들었습니다. 읽기 쉬운 글과 그림을 함께 넣어 전국에 배포했는데, 설령 글을 모르는 백성이라도 이걸 보고 본보기로 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왕 중에선 정조가 효심으로 유명했습니다. 정조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비극적 죽음을 맞았는데요. 정조는 훗날 왕이 된 뒤 아버지의 묘를 지금의 경기 화성으로 옮기고 자주 찾아가 참배했습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까지 긴 행차를 떠나기도 했지요.
나라에서 '효자' 선정해 표창
조선에서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효자를 선정하고 표창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사람에게는 효자비나 정려문(효자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을 세워 주기도 했습니다. '이 집안에는 효자가 나왔다'는 표시를 남기는 것이었죠. 또 세금을 줄여 주는 등 혜택도 있었습니다. 양반 가문은 명예를 얻었고, 평민이나 노비의 경우에는 신분 상승이나 사회적 보상을 받는 일도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부작용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효자로 인정받으면 집안 전체가 혜택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사람은 지나친 효행을 연출하거나 과장하기도 했대요. 많은 사람이 자기 손가락을 잘랐는데,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세종 21년에는 아홉 살 아이들이, 중종 37년에는 열세 살 아이가 손가락을 잘라 가족에게 자기 피를 먹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돌보고 약한 존재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만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