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일을 멈추고 산으로 가버린 평민들… 로마시대에도 파업 있었대요
입력 : 2026.05.05 03:30
파업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성과급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했어요. 회사가 영업 이익을 크게 얻은 만큼 근로자들이 받는 돈도 올려줄 것을 요구한 것이죠. 파업은 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일을 중단하는 집단행동이에요. 오늘은 역사 속 다양한 파업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 많은 농부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의 공장으로 모여들었어요. 당시 공장주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임금은 줄였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제대로 잘 수도, 식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런데도 공장주에게 불만을 말하기 어려웠어요. 불만을 제기하면 해고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동자들은 힘을 모아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함께 일을 멈추는 '파업'이라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산업 혁명 이후 많은 농부가 일자리를 찾아 도시의 공장으로 모여들었어요. 당시 공장주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임금은 줄였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제대로 잘 수도, 식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런데도 공장주에게 불만을 말하기 어려웠어요. 불만을 제기하면 해고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동자들은 힘을 모아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함께 일을 멈추는 '파업'이라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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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 2월 1일 자 조선일보. 원산 노동조합 연합회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조선일보 DB
당시 한 군인이 전쟁에 참여하는 동안 자신의 땅이 불타고 재산이 도난당했대요. 그런데 세금은 내야 해서 고리대금업자(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돈을 빌렸어요. 결국 그는 빚을 못 갚았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죠. 군중은 나라를 위해 싸운 자의 비참한 처지에 분노했지만 귀족들은 이를 해결해 주지 않았어요.
귀족들에게 실망한 평민들은 일을 멈추고 도시에서 5㎞ 정도 떨어진 산으로 이주했어요. 그곳에서 평민들은 방어 시설을 세우고 귀족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때까지 버텼죠. 평민들 없이는 로마 사회가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결국 평민들과 협상했어요. 이때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호민관'이라는 관직이 생겼어요.
우리나라에서는 1929년에 민족운동과 결합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일어났어요. 바로 함경남도 원산의 한 석유 회사에서 일어난 '원산 총파업'입니다. '문평제유'라는 석유 회사는 주요 간부가 모두 일본인이었어요. 1928년 9월 고타마라는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하자, 120여 명의 노동자가 고타마를 파면할 것을 요구하는 파업을 일으켰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타마는 파면되지 않았죠. 게다가 회사 측은 경찰과 협조해 파업을 일으킨 조선인들을 체포하려 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원산 지역 노동조합 연합회는 전체 조합원에게 돈을 걷어 문평제유 노조 파업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어요. 이 파업은 결국 노동자 측의 패배로 끝났지만, 무려 2200명이 단결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 했던 움직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