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산 이야기] 조선 문인 김시습이 10년 넘게 숨어살던 산, 왜 '반역산'이라고 불렀을까요?

입력 : 2026.05.04 03:30

수락산

서울의 북동쪽 경계에는 수락산(641m)이 있습니다. 산 이름은 물 수(水)에 떨어질 락(落)을 쓰는데요.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수락산에 있는 금류·은류·옥류 폭포 때문에 이름 붙었다는 설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수락산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울, 북쪽은 경기 의정부, 동쪽은 경기 남양주예요. 이름이 유래했다는 폭포 3개는 남양주 청학동 계곡에 몰려 있어요. 옛날부터 많은 선비가 이곳에 와서 시를 지었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초기의 문인 김시습입니다. 그는 벼슬을 포기하고 재야에 숨어 지낸 천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기로 왕실에까지 소문이 났지만,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전국의 산을 떠도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중 10년 넘는 세월을 수락산에 살았습니다. 그의 여러 호(號) 중 하나는 '동봉(東峰)'인데 한양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봉우리였던 수락산을 뜻합니다.

등산객들이 밧줄을 잡고 수락산 기차바위를 오르고 있습니다. /영상미디어
등산객들이 밧줄을 잡고 수락산 기차바위를 오르고 있습니다. /영상미디어
김시습이 살았던 곳 인근에 금류폭포가 있는데요. 금류폭포는 그가 쓴 '자이(自貽)'라는 시에도 등장합니다. '젊어서는 명산에 노닐며, 속된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았네. 늘그막에는 폭포 곁에 살며, 맑은 시냇가의 늙은이로 살고자 했네.'

조선 후기의 문인 박세당은 김시습을 존경해 수락산에 살았어요. 박세당의 시에서 수락산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그는 '우뚝 솟은 산세로는 삼각산(북한산)과 도봉산이 갑을을 다투지만, 그윽하고 기이함은 동봉(수락산)이 으뜸'이라 했습니다.

흔히 수락산은 동쪽이 앞이고, 서쪽이 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부터 서쪽에 있는 서울을 등지고 앉았다고 해서 '반역산'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출세를 거부한 김시습이 살았던 산이라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도 하고, 서쪽은 가파르고 동쪽은 완만한 산세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수락산에 있는 내원암은 조선 정조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자식이 없던 정조가 이곳 스님에게 득남 기도를 부탁했고, 이듬해 순조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정조는 기뻐하여 절을 크게 지어줬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차바위가 수락산 최고 명소로 여겨집니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인데요. 바위 표면에 기차 궤도처럼 세로로 길게 홈이 파여 있어 '홈통바위'라고도 불려요. 바위에는 어릴 적 운동회 줄다리기를 할 때 쓰던 거대한 밧줄이 놓여 있어 이것을 붙잡고 오릅니다. 암벽 전체 길이가 100m에 이릅니다. 이 외에도 수락산에는 코끼리바위, 독수리바위, 물개바위 등 여러 동물과 사물을 닮은 화려한 바위가 많습니다.
신준범 월간 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