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 미술관 산책] 나치가 박해했던 현대미술, 30년 뒤 베를린에 모였어요

입력 : 2026.05.04 03:30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2021년 여름, 독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이 재개관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어요. 2000억원을 투입해 장장 6년간 대공사를 마쳤는데, 겉모습이 예전 그대로였거든요. 대체 그 긴 시간 동안 미술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이번에는 현대 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남긴 이 신비로운 건물과, 그 속에 숨겨진 파란만장한 미술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독일서 쫓겨났던 거장이 지은 건물

미스 반데어로에는 근대 건축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라는 건축 철학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이 미술관이 베를린에 세워지기까지는 영화 같은 사연이 있어요. 설계를 맡은 반데어로에는 원래 독일의 예술 종합 학교였던 바우하우스의 학장이었지만, 1930년대 히틀러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답니다.

1937년, 나치는 현대미술이 독일인의 정신을 오염시킨다며 작품을 몰수하거나 불태웠고, 예술가들을 미치광이 취급하며 박해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거나 숨어 지내며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죠. 현대미술을 '퇴폐 미술'이라 부르며, 바우하우스 문도 닫게 했어요.

하지만 역사는 참 아이러니합니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던 그가 30여 년 뒤, 세계적인 거장이 되어 독일로 돌아온 것이죠. 그는 과거 퇴폐 미술이라 낙인찍힌 작품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었습니다. 1968년 완공된 이 미술관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고국 독일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랍니다.

실제로 보면 유리 상자 위에 철판 하나를 얹어 놓은 듯 심심한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은 반데어로에가 일생 동안 추구해온 절제미와 단순함의 결정체로, 20세기 건축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1960년대 미술관들은 온통 하얀 벽으로 막힌 '화이트 큐브'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유리와 철재만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대단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유리를 통해 사방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였죠.

독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전경입니다. 거대한 유리 상자 위에 철판을 얹은 듯한 모습이에요.
독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전경입니다. 거대한 유리 상자 위에 철판을 얹은 듯한 모습이에요.
신국립미술관 1층의 유리 홀이에요.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에요.
신국립미술관 1층의 유리 홀이에요.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에요.
독일 화가 오토 딕스가 1934~1936년에 그린 ‘플랑드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혹한 전쟁터를 묘사했어요.
독일 화가 오토 딕스가 1934~1936년에 그린 ‘플랑드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혹한 전쟁터를 묘사했어요.
독일 화가 게오르크 그로스의 1926년 작품 ‘사회의 기둥들’. 정치인, 언론인, 성직자 등 당시 독일 지도층을 풍자한 그림입니다. /이은화 작가·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독일 화가 게오르크 그로스의 1926년 작품 ‘사회의 기둥들’. 정치인, 언론인, 성직자 등 당시 독일 지도층을 풍자한 그림입니다. /이은화 작가·베를린 신국립미술관
거장의 건축을 보존한 리모델링

신국립미술관은 설립된 지 반세기가 넘으면서 노후화가 심해졌습니다. 반데어로에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외형을 바꾸지 않으면서 기능만 개선하는 리모델링이 필요했습니다.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이끈 리모델링 공사의 핵심은 '최대한 미스답게(As much Mies as possible)'였어요. 누군가는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실망 섞인 감탄을 내뱉었지만, 사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의도였죠. 치퍼필드는 자신의 건축적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거장의 숨결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는 작은 나사 하나까지 무려 3만5000개에 달하는 건축 부품을 하나하나 뜯어내 번호를 매겼어요. 그것들을 정성껏 닦고 수리해 원래 자리에 다시 끼워 맞췄죠. 덕분에 우리 눈에는 1968년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지만, 내부에는 결로 현상을 막고 작품을 보호할 최첨단 온·습도 조절 장치와 자외선 차단 시스템이 마법처럼 숨겨졌어요. 또한 지하 바닥을 더 깊게 파내서 관람객을 위한 편의 시설과 넉넉한 수장고를 확보했답니다.

우리는 리모델링을 할 때 흔히 새로움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의 사례는 지켜내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줍니다. 거장의 철학을 존중하며 묵묵히 그 시간을 복원해 낸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50여 년 전 반데어로에가 꿈꿨던 감동을 오늘날에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랍니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면 기둥 없이 탁 트인 넓은 유리 홀이 우리를 맞이해요. 이곳은 작품 연출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기획 전시 공간이에요. 미술관의 핵심 소장품들과 야외 조각 공원은 지하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죠.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1층 유리 홀과 아늑하면서도 집중력 있는 지하 전시실이 대비를 이루는 구조랍니다.

퇴폐 미술에서 국가 대표 컬렉션으로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왜 이곳이 '20세기 독일 미술의 성지'라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나치가 '퇴폐적'이라며 내쫓았던 현대 미술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키르히너, 그로스, 베크만, 딕스 같은 독일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피카소, 달리, 뭉크부터 앤디 워홀과 바넷 뉴먼의 대작까지 아우르며 20세기 미술의 거대한 지도를 완성하게 됐답니다.

대체 나치는 어떤 작품을 그토록 미워했던 걸까요? 오토 딕스의 '플랑드르'(1934~36)가 대표적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한 딕스는 전장의 참혹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어요. 영광스러운 전쟁만을 강조하던 나치에게 딕스의 그림은 눈엣가시였죠. 결국 그는 교수직에서 쫓겨나 시골에 칩거해야 했습니다.

게오르크 그로스의 '사회의 기둥들'(1926) 역시 나치가 혐오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독일 사회를 이끌던 지도층의 민낯을 날카롭게 파헤친 풍자화에요. 그림 속 정치인의 잘린 머릿속에는 전쟁을 꿈꾸는 군인이 들어 있고, 신문을 쥔 언론인의 머리 위에는 빈 커피잔이 씌워져 있어요. 도시가 불타는 비극 속에서도 눈을 감고 축복만 내리는 성직자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기득권을 이토록 직설적으로 조롱했으니, 나치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겠죠. 결국 나치는 이 작품이 '독일 군대와 종교를 모독하고 민족 정신을 병들게 한다'며 몰수했고, 작가는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답니다.

6년 동안 3만5000개의 부품을 하나하나 닦아내며 정성껏 복원된 것은 건물만이 아닐 겁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박해 받던 시대를 견뎌온 예술 정신이 바로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이은화 미술평론가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