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벚꽃비 내리는 건 바람 아닌 식물 호르몬 때문이래요

입력 : 2026.04.28 03:30

에틸렌

따뜻한 봄이 되면 거리와 공원은 어느새 연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벚꽃이 활짝 피면,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특히 벚꽃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아요.

그런데 벚꽃은 봄철에 왜 이렇게 짧게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걸까요? 나무 가득 피어 있던 꽃이, 며칠만 지나면 대부분 떨어져 바닥에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일까요? 아니면 비 때문일까요?

사실 벚꽃이 떨어지는 것은 식물이 스스로 보내는 정교한 신호에 따른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식물 속에서는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특별한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그 물질의 이름은 바로 '에틸렌'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거의 없지요. 과연 이 에틸렌은 어떤 방식으로 꽃잎을 떨어지게 만드는 걸까요?

[재미있는 과학] 벚꽃비 내리는 건 바람 아닌 식물 호르몬 때문이래요
식물은 호르몬으로 스스로 조절해요

동물은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위험하면 도망치는 것처럼 몸을 움직여 환경에 적응합니다. 하지만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몸속에서 신호를 만들어 스스로 변하는 방법을 사용해요. 이때 사용하는 물질이 바로 식물 호르몬이랍니다.

식물 호르몬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요. 이 중 '옥신'이라는 호르몬은 줄기가 빛을 향해 자라도록 도와주고, '지베렐린'이라는 호르몬은 식물의 키가 더 크게 자라도록 도와줍니다. '사이토키닌'이라는 호르몬은 세포 수를 늘려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오늘 살펴볼 에틸렌도 바로 이 같은 식물 호르몬 중 하나예요. 에틸렌은 탄소 2개와 수소 4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액체 상태인 다른 대부분의 호르몬과 달리 기체 상태랍니다. 그래서 에틸렌은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어요.

에틸렌의 주요 역할은 식물의 성장과 노화에 관여하는 것이랍니다. 에틸렌은 식물 세포와 세포 사이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던 부분들을 조금씩 약하게 만듭니다. 마치 접착제로 단단하게 붙어 있던 부분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죠. 에틸렌 때문에 식물 세포들 사이 연결이 점점 느슨해지면서 잎이 떨어지거나, 꽃이 시들거나, 열매가 익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에틸렌이 조절하는 거죠.

벚꽃이 빨리 지는 이유

식물이 에틸렌을 만드는 이유는 자신의 씨앗을 남기고, 더 널리 퍼지기 위해서예요. 보통 꽃이 피고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주면, 식물은 그때부터 씨앗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이 끝난 뒤에도 꽃이 계속 피어 있으면, 이때 식물은 에틸렌을 만들어 꽃에게 '이제 너의 역할은 끝났어'라는 신호를 보내 꽃이 떨어지게 만듭니다. 꽃이 떨어졌기 때문에 꽃 유지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씨앗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답니다.

꽃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피지 않아요. 각 식물은 자신이 살아남기에 가장 유리한 시기를 골라 꽃을 피우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지요.

여름이나 가을에는 활동하는 곤충이 많아요. 그래서 그때 피는 꽃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꽃을 피우며 여유 있게 번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벚꽃은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피어 빠르게 번식을 마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른 봄에는 활동하는 곤충이 적기 때문에, 많은 꽃을 한꺼번에 피워야만 많은 곤충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이 꽃가루를 옮기고 나면 벚꽃나무는 씨앗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에틸렌을 방출해 꽃이 떨어지게 하는 거죠. 봄철 우리가 흩날리는 벚꽃비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가 아니라, 식물이 스스로 꽃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과일이 익는 것도 같은 원리

우리가 먹는 과일이 익는 과정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식물의 열매인 과일 속에서 에틸렌이 만들어지면, 초록색이던 과일은 점점 노랗거나 빨갛게 익고, 단단했다가 부드러워지며, 단맛도 더 강해집니다.

또한 에틸렌은 기체 상태로 공기 중에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익은 과일에서 나온 에틸렌이 주변 과일에도 영향을 줍니다. 주위에서 에틸렌을 받은 과일들은 스스로 에틸렌을 더 만들어 내며 숙성 속도를 높이게 되지요. 그 결과 주변 과일들까지 연쇄적으로 더 빨리 익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 한 송이 중 일부가 먼저 익기 시작하면, 그 바나나에서 나온 에틸렌이 주변의 덜 익은 바나나로 퍼지게 됩니다. 그러면 영향을 받은 바나나들도 에틸렌을 더 만들어 내면서 숙성이 빨라지고, 결국 바나나 한 송이가 한 번에 익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요.

이런 성질을 이용해 과일의 익는 시기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덜 익은 상태로 수확한 과일을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면서 숙성을 늦췄다가, 유통 시기에 맞춰 일정한 공간에 모아 에틸렌 기체를 인위적으로 주입해 한꺼번에 익히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과일들이 비슷한 속도로 고르게 익게 되지요.

벚꽃이 피고 지는 모습이나 과일이 익는 과정처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현상 뒤에는 이런 정교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물질 하나가 자연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들은 그 원리를 이해해 생활 속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동훈 작가·'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원소 상식' 저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