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6·25 때 가족과 생이별한 그리움, 엽서·은박지에 담았죠

입력 : 2026.04.27 03:30

'쓰다, 이중섭' 전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물가가 불안정해지는 등 전쟁의 여파는 뉴스에서 경제 지표로 보도되곤 하죠. 하지만 우리는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른은 일을 하고, 아이는 학교와 놀이터에 가고, 저녁에 함께 모여 밥을 먹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잘 지켜질 수 있을까요?

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을 앗아갑니다. 오늘 소개할 이중섭(1916~1956) 화가는 1950년 우리나라에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이별하게 됐어요. 처음엔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는데, 안타깝게도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중섭 하면 두껍고 강렬한 붓질로 굳건하고 기운찬 황소를 그린 화가로 먼저 떠올리지만, 아이를 그린 그림도 많이 남겼어요. 두 아들을 닮은 아이들을 그리며, 이중섭은 평생 동안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었습니다.

이중섭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쓰고 그린 엽서와 작은 그림 총 80점이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쓰다, 이중섭' 전시에서 오는 6월 14일까지 공개됩니다. 그가 가족을 그리워한 애틋하고 절절한 시간이 작품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이중섭의 1955년 작품 ‘환희’. 닭 두 마리가 춤추는 모습을 그렸어요.
이중섭의 1955년 작품 ‘환희’. 닭 두 마리가 춤추는 모습을 그렸어요.
전쟁과 가난 속에서 이어진 사랑

<작품 ①>은 두 마리의 닭이 함께 기쁨의 춤을 추고 있는 '환희'라는 그림입니다. 닭들은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를 나타낸 것으로, 혼자 병들고 지친 이중섭이 떨어져 지낸 아내와의 재회를 상상하며 그렸어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노부인이 된 마사코가 2014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이 그림이 전시된 것을 보고는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후배였던 일본인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국적의 벽, 전쟁 등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힘들게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의 전운이 짙어져 국경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장래를 약속하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서둘러 한국으로 건너왔어요. 마사코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때가 바로 1945년이었고,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도쿄의 하늘에는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있었죠. 마사코는 공습을 뚫고 시모노세키까지 가서 임시 연락선(가까운 거리를 다니는 배)을 타고 부산으로 건너왔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중섭을 만났어요.

그해 원산(지금의 북한 강원도)에서 두 사람은 결혼했고 신혼살림을 차렸어요. 하지만 6·25전쟁이라는 또 한 번의 시련이 그들에게 왔습니다. 그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내려갔지만,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가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해초와 게를 삶아 먹으며 지내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당분간 처가인 일본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전시회를 열고 돈을 벌어 곧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전쟁 직후 어수선한 휴전 상황이라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953년 이중섭이 두 아들 태현·태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1953년 이중섭이 두 아들 태현·태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동안 이중섭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애정 어린 편지를 썼어요. <작품 ②>는 두 아들에게 보낸 것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들들이 그리울 때마다 그는 장난스럽고 재미난 그림을 엽서에 그려 우편으로 부쳤어요.

담뱃갑 은박지에 남긴 그림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남은 이중섭은 쉬지도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다가도 잠깐의 휴식 시간만 생기면 연필로 무언가 그렸어요. 담뱃갑 속 은박지도 버리지 않고 그 위에 날카로운 철심으로 선을 새겨 보곤 했어요. 이런 시도는 판화 분위기를 내는 독특한 느낌의 은지화(銀紙畵·은빛 종이에 그린 그림) 작품들로 이어졌습니다.

은지화 ‘가족 1’. 은박지에 그린 그림입니다.
은지화 ‘가족 1’. 은박지에 그린 그림입니다.
<작품 ③>은 은지화 '가족 1'이에요. 그림 속에는 아이처럼 보이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 저마다 물고기를 잡거나 새를 끌어안고 뒹굴고 있어요. 이것이 이중섭이 생각하는 즐거운 가족의 모습인가 봅니다. 혼자 지내는 쪽방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림에서만큼은 쓸쓸한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해맑은 어린아이들의 세상

화가가 가족을 통해 보여주는 사랑과 행복의 모습은 아주 소박해요. 엄청나게 훌륭한 자연 경관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도 아니고, 가족 구성원이 맛난 음식을 먹거나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가족이 남자와 여자, 아이 구별할 것 없이 모두 발가숭이로 노닐고 있어요. 발가벗고 있는데도 아무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죠.

이중섭이 1954년 완성한 ‘두 아이와 비둘기’. 한 아이가 새를 끌어안고 있어요. /이중섭미술관·조선일보 DB·이주은 교수
이중섭이 1954년 완성한 ‘두 아이와 비둘기’. 한 아이가 새를 끌어안고 있어요. /이중섭미술관·조선일보 DB·이주은 교수
고민 없이 해맑은 세상, 이것이 곧 이중섭이 꿈에 그리던 낙원이 아니었을까요? 그 낙원에서 화가가 찾은 가장 진실한, 우주의 중심과도 같은 존재는 바로 어린아이였답니다. <작품 ④> '두 아이와 비둘기'에서도 새를 끌어안고 근심 없는 미소를 띠며 노는 발가숭이 어린이가 보입니다. 평화롭고 흥겨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동화 같은 그림이죠.

낙관적이던 이중섭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늘 개구쟁이 아이들을 그리면서 스스로 위로하곤 했어요. 가족과의 재회를 그토록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행복한 상상은 실제 이중섭의 삶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1956년에 그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병원 침대 위에서 홀로 짧은 생을 마쳤어요. 하지만 그가 염원한 행복은 사라지지 않고 그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