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내일은 못본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봐라" 시·청각 장애인 헬렌 켈러의 가르침이죠

입력 : 2026.04.20 03:30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재밌다, 이 책] "내일은 못본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봐라" 시·청각 장애인 헬렌 켈러의 가르침이죠
헬렌 켈러 지음|박에스더 옮김|출판사 사우|가격 1만3500원

헬렌 켈러(1880~1968)는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었습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화가 난 헬렌은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며 소리를 지르곤 했답니다. 헬렌은 자서전인 이 책에서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날이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1887년 3월 3일이었다고 말합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무언가를 배우고 글을 익혔을까요? 설리번 선생님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펌프 꼭지에 어린 헬렌의 한 손을 갖다 댔습니다. 다른 한 손에는 '물'이라고 썼습니다. 헬렌은 이 일로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글을 가르칠 때는 글자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카드를 활용했습니다. '침대', '위에', '인형', '있다' 등이 적힌 카드를 만지고 이어서 '침대 위에 인형이 있다'라는 문장을 만들어보는 식으로 말이지요. 각 낱말의 뜻은 설리번 선생님이 설명해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깨우친 후에는 점자를 배웠죠. 점자를 배운 헬렌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고 합니다. '아라비안나이트', '로빈슨 크루소', '작은 아씨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정글북', '소공자' 등을 읽었다고 해요.

헬렌은 그리스 고전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를 읽을 땐 '눈이 멀었다는 걸 잊고 높은 하늘이 내 세상인 것처럼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 즉 '유토피아'를 책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나의 유토피아인 책의 나라에서 친구들(책·작가·등장인물 등)과 친하게 지내는 데에 육체적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헬렌은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볼 것인지 상상해 봤습니다. 첫째 날은 설리번 선생님을 비롯한 친한 사람들을 보고 오후에 숲을 산책합니다. 둘째 날에는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서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진화, 문명과 예술을 보고 저녁에는 극장이나 영화관에 갈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헬렌은 시각 장애인 교육과 복지 향상을 이끌면서 전 세계 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최고 훈장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지요. 이렇게 장애를 딛고 큰 업적을 이룬 헬렌은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이면 더는 보지 못할 사람처럼 보고, 더는 듣지 못할 사람처럼 듣고, 더는 만질 수 없는 사람처럼 만지고, 더는 냄새 맡지 못할 사람처럼 향기를 맡고, 더는 맛을 느끼지 못할 사람처럼 음식을 맛보라고요.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세상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