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하는 고전] 밀실만 있는 '남한' 광장만 있는 '북한'… 6·25전쟁 포로 주인공, 어딜 선택했을까?

입력 : 2026.04.16 03:30

광장

[꼭 읽어야하는 고전] 밀실만 있는 '남한' 광장만 있는 '북한'… 6·25전쟁 포로 주인공, 어딜 선택했을까?
최인훈 지음|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격 1만3000원

6·25 전쟁이 끝난 뒤 포로들을 싣고 인도로 향하는 배가 한 척 있습니다. 갑판에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선택지를 모두 거부하고 제3의 길을 택한 청년 이명준이 서 있습니다. 마침내 전쟁과 이념의 갈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려던 참이지요. 그런데 그는 돌연 깊은 바닷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대체 이 청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먼저 이 소설의 핵심 개념인 '밀실'과 '광장'을 알아야 합니다. 밀실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안락한 공간이고, 광장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의 가치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밀실과 광장이 모두 필요하지요. 하지만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지 못했습니다.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던 명준이 보기에, 남한은 각자 이익을 좇는 밀실만 있을 뿐 다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광장은 없는 곳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경찰에 끌려가 모욕까지 당하면서 명준은 남한 사회에 완전히 절망하고 맙니다.

결국 명준은 자신이 꿈꾸던 광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월북합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훨씬 커다란 억압이었습니다. 북한에는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거대한 광장만 있을 뿐, 개인이 숨을 고를 수 있는 밀실은 없었습니다. 남과 북 어느 곳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자리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중 지친 명준을 붙들어 준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간호장교 은혜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전쟁은 은혜와 뱃속에 있는 아기마저 앗아가 버립니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에게 남과 북 중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그는 단호하게 한 단어만 되풀이합니다. "중립국." 어디에도 자신을 맡길 수 없다는 절망과 어떻게든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었죠.

인도로 향하던 배에서 명준은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 두 마리를 바라봅니다. 그는 새들에게서 잃어버린 연인과 아기를 겹쳐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던 온기만큼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택하기보다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광장'은 지나간 시대의 기록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거울이 됩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이념과 진영 논리로 나뉘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쉽게 적으로 돌리곤 합니다. 60여 년 전 이명준이 절망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섣불리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고 싶은 유혹이 들 때, 혹은 집단의 목소리에 휩쓸려 나만의 생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낄 때 이 책을 펼쳐보세요.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하는 세상에 살았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진혁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