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세자 아닌 왕비의 아들… '자가'라고 불렸어요
입력 : 2026.04.16 03:30
조선시대 대군
남녀 주인공으로 변우석·아이유를 발탁해 방영 전부터 관심을 끈 TV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지난 10일 방영을 시작했어요. '만약 지난 역사가 이미 일어난 사실과 다르게 전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대체 역사물'인데, 현재도 우리나라에 여전히 왕실과 신분제가 존재한다는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재벌 가문이지만 평민인 여주인공이 '이안대군'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노린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군(大君)'이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대군•군' '공주•옹주' 차이는?
조선시대 왕자를 보면 어떤 사람은 양녕대군·효령대군(이상 태종의 아들)처럼 '대군'으로 불리고, 어떤 사람은 임해군·순화군(이상 선조의 아들)처럼 '군(君)'이라 불립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정비(正妃), 즉 본처인 왕비의 아들은 '대군', 왕의 첩인 후궁의 아들은 '군'입니다. 대군의 명칭은 지역 이름에서 따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의 '수양'은 황해도 해주, 다른 아들인 금성대군의 '금성'은 전라도 나주의 별칭이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장차 왕위를 이을 세자는 '대군'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의 맏아들은 정식으로 세자가 되기 이전에는 '원자'라고 불리다가, 이후 왕이 되기 전까지 '세자'라고 불렸어요. 원래 세자였던 양녕대군의 경우 1418년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비로소 '양녕대군'이란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세자의 아들은 후궁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군'이라 불렸습니다.
딸의 경우에는 어땠을까요? 정비가 낳았다면 '공주(公主)'라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에서 왕이 딸을 시집보낼 때 최고위 세 관직을 일컫던 삼공(三公)이 그 일을 주관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후궁이 낳은 딸은 뭐라고 부를까요? '옹주(翁主)'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누나였던 정순공주는 태종과 정비 원경왕후의 딸이었고,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후궁인 귀인 양씨가 생모였습니다.
'대군•군' '공주•옹주' 차이는?
조선시대 왕자를 보면 어떤 사람은 양녕대군·효령대군(이상 태종의 아들)처럼 '대군'으로 불리고, 어떤 사람은 임해군·순화군(이상 선조의 아들)처럼 '군(君)'이라 불립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정비(正妃), 즉 본처인 왕비의 아들은 '대군', 왕의 첩인 후궁의 아들은 '군'입니다. 대군의 명칭은 지역 이름에서 따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의 '수양'은 황해도 해주, 다른 아들인 금성대군의 '금성'은 전라도 나주의 별칭이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장차 왕위를 이을 세자는 '대군'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의 맏아들은 정식으로 세자가 되기 이전에는 '원자'라고 불리다가, 이후 왕이 되기 전까지 '세자'라고 불렸어요. 원래 세자였던 양녕대군의 경우 1418년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비로소 '양녕대군'이란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세자의 아들은 후궁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군'이라 불렸습니다.
딸의 경우에는 어땠을까요? 정비가 낳았다면 '공주(公主)'라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에서 왕이 딸을 시집보낼 때 최고위 세 관직을 일컫던 삼공(三公)이 그 일을 주관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후궁이 낳은 딸은 뭐라고 부를까요? '옹주(翁主)'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누나였던 정순공주는 태종과 정비 원경왕후의 딸이었고,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후궁인 귀인 양씨가 생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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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포스터입니다. 이안대군(오른쪽)과 여주인공이 서로 바라보고 있어요.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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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3년에 촬영한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모습입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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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호 화백이 1935년 그린 세조 어진 초본. 세조는 세종의 차남으로 원래 수양대군이었으나 계유정난을 통해 권력을 잡고 조선 7대 임금이 됐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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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망원정 터입니다. '경치를 멀리 바라본다'는 의미의 망원정(望遠亭)은 조선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머물던 정자예요. 지금 건물은 1989년 복원된 거예요. 인근 망원동이란 지명도 이 정자에서 유래했죠. /국가유산청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보면 대군에게 '자가(自家)'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맞는 설정입니다. 18세기 학자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에는 '나라의 풍속에 일컫기를, 왕자와 대군·왕손을 자가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현재는 조선 시대 임금과 가까운 인물, 그러니까 대군·군·공주·옹주와 일부 후궁을 사람들이 '자가'라고 불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것은 '자기(自己)'와 비슷한 뜻으로 예스럽게 부르는 높임말이라고 해요.
일부 사극에서 '대군 마마' '공주 마마'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합니다. '자가'가 변한 말이 '자갸'인데 1960년대까지도 쓰였으며, 이것이 요즘 부부나 연인 사이에 쓰는 '자기야'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세자는 뭐라고 불렀을까요? 세자와 세자빈 부부의 호칭은 황제의 호칭인 '폐하(陛下)', 왕의 호칭인 '전하(殿下)'보다 낮은 '저하(邸下)'라고 했습니다. 앞의 두 명칭이 궁전 계단 아래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의 임금을 부르는 개념이라면, '저하'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의 세자를 부른다는 의미였어요.
사실 '대군'의 공식 명칭은 '부원대군(府院大君)'이었습니다. 대군은 그 약칭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대군의 정실 아내는 그 명칭이 드라마 제목처럼 '대군 부인'이 아니라 부원대군의 '부' 자를 딴 '부부인(府夫人)'이었습니다.
훗날 조선의 왕이 된 '대군'은 6명
조선 시대 '대군'이었던 사람이 왕이 된 경우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왕이 되기 전 4대 세종은 충녕대군, 6대 세조는 수양대군, 8대 예종은 해양대군, 11대 중종은 진성대군, 13대 명종은 경원대군, 17대 효종은 봉림대군이라 불렸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모두 정실 왕비가 낳은 왕자 출신이긴 한데, 원래 세자 자리에 있었던 인물은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세종은 충녕대군 시절 형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뒤 새 세자가 됐고, 세자가 아니었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이라는 정변을 일으킨 뒤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됐습니다. 예종은 세자였던 형(추존왕 덕종)이 일찍 죽어 새 세자가 됐죠.
성종과 세 번째 정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진성대군은 세자 자리를 거치지 않았는데, 이복 형 연산군을 몰아내는 반정(反正)이 일어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을 '중종반정'이라 합니다.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의 아들인 경원대군은 이복 형 인종이 7개월 만에 승하하자 다음 왕인 명종이 됐죠. 인조와 인열왕후의 차남인 봉림대군은 형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은 뒤 세자로 책봉돼 훗날 효종이 됐습니다.
'대군'인 적 없이 왕이 됐다가 죽은 뒤 '대군'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바로 6대 단종 임금입니다. 왕위를 잃은 뒤인 1457년(세조 3년) '노산군'으로 강등돼 죽음을 맞은 단종은 훗날 숙종 때 복권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노산대군'으로 승격됐다가 다시 '단종'이 돼 왕위를 되찾았습니다.
권력엔 뜻을 두지 말고 살아야 했죠
또 한 가지, 조선 시대의 대군은 '권력에 뜻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야 의심을 피해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자연인'으로서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 살아간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나, 풍류에 심취했던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처럼 말이죠. 반면 선조가 새 세자로 삼으려 했던 영창대군은 이복 형 광해군이 왕이 된 뒤 살해됐습니다.
대군은 벼슬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 초의 법전인 '속육전'에서부터 '종친불임이사(宗親不任以事)', 즉 '임금의 친족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양대군을 제외하면 이후의 모든 대군은 이 원칙을 지켰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대군이 섭정(군주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맡는 것은 조선 왕조에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어차피 가상의 대체 역사물이니 '그 이후에 법이 바뀌었던 것'이라고 하면 그만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