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어릴 적 추억의 젓가락 행진곡, '피아노 연탄곡'이에요

입력 : 2026.03.09 03:30

피아노 듀오

이찬혁·이수현 남매로 이뤄진 '악동뮤지션'이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영감의 샘터'라는 새 회사로 얼마 전 독립했습니다. 기발한 창작력과 노래 실력으로 큰 사랑을 받는 남매 듀오를 보니, 클래식 음악에서 전설 같은 남매 피아노 듀오가 떠오릅니다. 바로 모차르트와 그의 누나 난네를이에요.

모차르트 남매 듀오

1780년 요한 네포무크 델라 크로체라는 화가가 모차르트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모차르트가 살던 집 응접실이었는데, 벽에는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는 바이올린을 든 아버지 레오폴트가 서 있고, 왼쪽에는 모차르트와 네 살 많은 누나 난네를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요. 모차르트의 오른손과 난네를의 왼손이 'X자'로 교차하고 있어요. 피아노 듀오(두 명이 함께 연주하는 것)를 하는 모습입니다.

모차르트 남매는 어릴 적부터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습니다. 모차르트가 여덟 살이던 1764년 영국에서 이 남매가 함께 피아노 한 대로 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모차르트 남매가 최초의 피아노 듀오는 아니지만, 18세기 후반 커진 피아노 듀오의 인기를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가족 초상화가 완성된 이듬해 모차르트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48'을 작곡했습니다. 피아노 두 대를 두 사람이 각각 연주하며 흥미진진한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죠. 피아노 한 대로 두 사람이 연주하는 '연탄곡'은 더 많이 남겼습니다.

요한 네포무크 델라 크로체가 1780년 그린 모차르트 가족의 초상화입니다. /위키피디아
요한 네포무크 델라 크로체가 1780년 그린 모차르트 가족의 초상화입니다. /위키피디아
2013년 클리블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수상자 4명이 한 피아노에서 알베르 라비냐크의 갤롭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클리블랜드 유튜브
2013년 클리블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수상자 4명이 한 피아노에서 알베르 라비냐크의 갤롭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클리블랜드 유튜브
2021년 9월 음반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과 박상욱. 이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함께 유학하다가 '신박 듀오'를 결성했어요. /연합뉴스
2021년 9월 음반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신미정(왼쪽)과 박상욱. 이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함께 유학하다가 '신박 듀오'를 결성했어요.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추모 음악회에서 연주를 마친 김선욱(왼쪽부터)·선우예권·조성진·임윤찬이 네 대의 피아노 앞에 서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어요. /현대차그룹
지난달 25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추모 음악회에서 연주를 마친 김선욱(왼쪽부터)·선우예권·조성진·임윤찬이 네 대의 피아노 앞에 서서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어요. /현대차그룹
원 피아노 포 핸즈, 피아노 연탄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네요. 두 사람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형태를 일컬어 '피아노 듀오' 또는 '피아노 듀엣'이라고 부릅니다. 모두 '피아노 이중주'를 뜻해요. 여기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먼저 피아노 한 대를 두 사람이 치면 '원 피아노 포 핸즈(1 piano 4 hands)', '피아노 연탄'이라고도 합니다. '이을 연(連)'에 '칠 탄(彈)' 자를 써서 피아노 한 대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서 하는 연주를 가리키죠. 어린 시절 친구들과 신나게 치던 '젓가락 행진곡'이 바로 연탄곡입니다. 18~19세기 유럽에서 집집마다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가족들끼리 어깨를 맞대고 연탄곡을 치는 모습은 당시 부유한 가정의 상징이었습니다.

피아노 연탄을 연주할 때 오른쪽에서 고음을 맡는 사람을 '프리모(제1피아노)'라고 부르는데, 주로 선율을 맡습니다. 왼쪽에서 낮은 음을 치는 사람은 '세콘도(제2피아노)'로, 저음과 반주를 맡고 페달을 밟습니다. 보통은 여성 연주자가 프리모, 남성이 세콘도를 맡아요. 젊은 연주자가 프리모, 경험이 많고 원숙한 연주자가 세콘도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형태의 피아노 이중주 중 다른 하나는 피아노 두 대를 두 사람이 각각 연주하는 '투 피아노즈 포 핸즈(2 pianos 4 hands)'입니다. 피아노 한 대로 치는 소박한 연탄곡보다, 피아노 두 대로 더 화려하고 전문적인 연주를 선보이지요.

몇 명까지 함께 연주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피아노 한 대를 칠 때는 아무래도 움직임에 제약이 많습니다. 팔꿈치를 움직이거나 페달을 밟고 악보를 넘길 때 옆 사람 때문에 신경 쓰일 거예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같이 치면 훨씬 더 불편하겠죠? 그런데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공연의 재미나 볼거리를 위해 여러 명이 한 피아노를 같이 연주하기도 해요. 연주자들이 팔을 교차하고 자리를 비켜주며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유쾌한 퍼포먼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작곡가였던 알베르 라비냐크는 한 피아노로 네 명이 연주하는 '원 피아노 에이트 핸즈(1 piano 8 hands)' 작품 '갤롭 행진곡'을 작곡했습니다. 네 명이 함께 치는 부분도 있지만, 두 명은 치고 두 명은 쉬는 부분도 나오는데요. 현대 연주자들은 이 부분에서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죠.

더 많은 연주자가, 더 많은 피아노를 함께 칠 수도 있습니다. 2018년 스위스 베르비에 축제에서는 세계 최정상 피아니스트 여덟 명이 한 무대에 올랐어요. 조성진·예브게니 키신·언드라시 쉬프·유자 왕·다닐 트리포노프·미하일 플레트뇨프·데니스 코츠킨·세르게이 바바얀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연주자들이 피아노 네 대(4 pianos 16 hands)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을 연주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 25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추모 음악회가 열렸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선우예권·조성진·임윤찬이 각각 한 대씩 4대의 피아노(4 pianos 8 hands)로 바그너의 관현악곡 '탄호이저 서곡'을 들려줬어요.

혈연·지연·학연으로 맺어진 피아노 듀오

피아노 듀오는 피아니스트 두 명이 팀을 짜서 자주 함께 연주하는 사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팀 이름인 거죠. 두 사람이 한 사람인 듯 연주하려면 오래 연습하며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자매나 부모·자녀, 부부 등처럼 가족 관계이거나, 학교 동기나 스승·제자처럼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전현주·전희진 자매가 결성한 '듀오 베리오자', 오스트리아 빈에서 함께 유학하던 중 결성된 피아니스트 신미정·박상욱의 '신박 듀오'가 있어요. 두 팀 모두 독일 ARD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듀오 부문에서 2위 수상이란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피아니스트 루카스·아르투르 유센이 결성한 '유센 형제 듀오'도 데뷔 20년이 넘었고요, 프랑스의 파스칼·아미 로제는 부부 듀오, 미국의 '앤더슨 앤 로 듀오'는 줄리어드 음악 학교 동문이 만든 팀입니다. 두 살 터울인 카티아·마리엘르 라베크 자매는 프랑스 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뒤 팀을 결성해서, 데뷔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노 듀오로 활동하고 있지요.

오는 4월, 풍성한 듀오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4월 초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유센 형제 듀오를, 4월 말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라베크 자매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지현 작가·'클래식을 읽는 시간' 저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