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 금관 도난 사건, 알고 보니 모조품이었죠

입력 : 2026.03.05 03:30

문화유산 도난 사건

오는 7일은 '신라 금관 도난 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국보인 신라 금관이 도둑맞았다고요? 한국 문화유산 '수난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잊힌 도난 사건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 세 가지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신문을 펼친 도둑 "이 금관이 가짜였다고?"

6·25 전쟁이 끝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1956년 3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금관 창고에 도둑이 들었어요. 도둑은 서봉총 출토 금관과 금령총 출토 금관을 감쪽같이 훔쳐 달아났습니다. 서봉총 금관은 높이가 30.7㎝인데요. 나뭇가지 모양 장식 세 개와 사슴뿔 모양 장식 두 개, 봉황 장식이 돋보입니다. 높이 27㎝의 금령총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4단으로 연결하고 가지 끝을 꽃봉오리 모양으로 마무리한 금관이죠.

어떻게 문화유산을 도둑맞을 수 있었던 걸까요? 박물관 수위가 그날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 3시간 동안 금관 창고의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한 틈을 타 범행이 이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국의 분위기는 좀 묘했습니다. '큰일 났다'는 경악보다는 '이제 어떡하지'라는 고민에 가까웠던 거예요. 이상하죠?

사정은 이랬습니다.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한국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덩어리들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피란'시켰어요. 이 과정에서 극비리에 신라 금관도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1952년 박물관 운영을 위해 금관 모조품을 만들고 보니 너무 잘 만들어 진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조품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은 채 전시했습니다. 만약 모조품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그럼 진품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 뻔한데 대답하기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1956년에 도둑맞은 두 금관은 전부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었던 겁니다. 도난 7개월 만에 마침내 범인이 검거됐어요. 경주에 사는 당시 20세 상습 절도범이었는데요. 훔친 금관을 지니고 경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신문을 사서 보곤 모조품이라는 걸 알고 실망해, 냇가 모래 속에 파묻었다는 거예요. 그동안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미국에 가 있던 진짜 금관은 1959년 무사히 돌아왔다고 해요.

서봉총 금관(왼쪽)과 금령총 금관.
서봉총 금관(왼쪽)과 금령총 금관.
국립공주박물관 도난 사건 다음 날인 2003년 5월 16일 박물관 관계자가 유리가 깨진 채 텅 비어 있는 금동관음보살입상 보관함을 살펴보고 있어요.
국립공주박물관 도난 사건 다음 날인 2003년 5월 16일 박물관 관계자가 유리가 깨진 채 텅 비어 있는 금동관음보살입상 보관함을 살펴보고 있어요.
충남 공주경찰서 관계자가 무사히 회수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2003년 5월 26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충남 공주경찰서 관계자가 무사히 회수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2003년 5월 26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고구려 불상인 금동 연가 7년명 여래입상입니다. /국가유산청·조선일보 DB
국보로 지정된 고구려 불상인 금동 연가 7년명 여래입상입니다. /국가유산청·조선일보 DB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