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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살구꽃 닮은 '지중해의 매화'…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재배했대요

입력 : 2026.02.23 03:30

아몬드꽃

김민철 기자
김민철 기자
몇 년 전 이맘때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아몬드나무 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스페인 남부 도시 론다의 '누에보 다리' 협곡엔 아몬드꽃이 만개해 정신없이 사진<큰 사진>에 담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몬드나무는 낙엽이 지는 나무로 4~10m로 자랍니다. 꽃은 지름 3~5㎝ 정도인데 꽃잎 5개가 흰색이나 옅은 분홍색으로 핍니다.

만개한 아몬드꽃은 멀리서 보면 벚꽃 같기도 하고 살구꽃 같은 느낌도 줍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꽃이 꽃줄기 없이 가지에 붙은 게 매화 같은 느낌도 주지요. 아몬드나무가 매실나무·벚나무·살구나무 등과 같은 벚나무속(Prunus)이니 꽃도 당연히 비슷하겠죠? 꽃이 진 자리에 맺히는 열매가 우리가 먹는 아몬드입니다.

열매 아몬드는 익숙하지만, 아몬드나무는 우리나라에 없답니다. 시리아·튀르키예 등 건조한 중동 지방이 원산지죠. 유럽과 중동 등 지중해 연안에서는 겨울을 이겨내고 추위가 채 가시기 전에 꽃이 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매화 정도인 셈이죠. 이스라엘에서도 아몬드나무는 2월 전후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성경에는 제사장이 누구인지 두고 다툼이 벌어지자 각 지파 대표가 지팡이를 내어 하룻밤 동안 성막에 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음 날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꽃이 피었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이를 살구나무 지팡이로 옮겼지만 성경에 나오는 살구나무는 실제로는 일찍 꽃이 피는 아몬드나무를 가리킨다고 해요.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스페인은 아몬드 재배의 원조 국가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언덕 등 야생에서 자라는 아몬드나무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가 가장 큰 아몬드 생산지이지만 이 아몬드나무도 스페인 출신 프란체스코회 신부들이 1700년대에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몬드꽃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작은 사진>에도 등장합니다. 고흐가 남프랑스 아를과 생레미에 살면서 아몬드꽃 시리즈를 그린 시기는 2월이었답니다. 이 그림은 1890년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고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복해 주려고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큰 가지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윤대녕 소설 '피에로들의 집'엔 고흐의 아몬드꽃 그림이 중요한 소재로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은 실패한 연극인이 서울 성북동의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이 집의 집사 겸 건물 1층 북카페 운영자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습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북카페에 고흐의 그림 '꽃 핀 아몬드나무'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 제의를 받아들입니다.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