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후기부터 '금광 열풍'… 전국에 광부만 45만명

입력 : 2026.02.12 03:30

'황금광(狂)' 시대

1㎏짜리 골드바가 쌓여 있어요. /AFP 연합뉴스
1㎏짜리 골드바가 쌓여 있어요. /AFP 연합뉴스
금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30만원대였던 순금 한 돈이 최근 100만원을 넘기도 했어요.

옛날부터 금은 귀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원자 번호 79번인 금은 안정된 금속이라 잘 변질되지 않고, 아름다운 광택을 가지고 있으며 부드러운 금속이라 다루기도 쉬웠습니다. 무엇보다 녹슬지 않아 '영원불멸'을 상징했지요. 옛날 사람들은 황금으로 화려한 부장품을 만들어 죽어서도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신라 시대 금관 모형도 바로 이런 물건이었죠.


조선 후기 금광 열풍이 시작되다

조선 시대 때는 금광을 '금점'이라고 불렀는데요.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금광업이 각광 받는 업종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 중국이 황금을 바치라는 요구를 계속 했거든요. 이에 부담을 느낀 조선은 금광을 일부러 폐쇄한 뒤 '조선 땅에서는 금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기도 했어요. 조선 후기로 들어가면서 상황이 바뀌어요. 중국·일본 등과 상업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황금이 중요한 국제 화폐가 됐기 때문이었죠.

금값이 나날이 오르자, 조선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하던 일을 내던지고 광산에 모여들게 됩니다. 조선 후기 수안(지금의 황해도 수안군) 금광에는 금을 찾으려는 사람 1만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갑자기 큰 마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도 이 시기 금을 캐는 가족을 만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몹시 가난했지만, 강바닥의 모래를 바가지로 훑어 금을 찾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모래에 섞여 있는 금을 '사금'이라고 해요. 운 좋게 한 조각이라도 찾으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 금광 열풍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대공황 속 1년간 금광 5000개 개발

1930년쯤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삽을 들고 땅을 파며 황금을 찾았던 '황금광(狂) 시대'가 펼쳐집니다. 시작은 바로 금본위제(금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 체제)였습니다. 금본위제에서 화폐는 국가가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발행됩니다. 각국 정부는 일정량의 금을 보유하려고 갖가지 정책을 세웠죠.

일본 역시 금 보유량을 늘리려고 금광을 사들입니다. 조선총독부와 일본 기업은 조선의 금광을 사들였어요. 금이 나올 가능성을 보고 채굴권 확보에 나선 겁니다. 이 과정에서 황금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어요. 광부였던 최창학은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에서 우연히 삼성 금광을 찾아낸 뒤 1929년 이 금광을 일본 회사에 130만원에 팔았습니다. 당시 괜찮은 직업의 월급이 40원, 여급들 월급은 10원 정도였으니까 굉장히 큰돈이었죠. 당시 최창학은 리무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서울 종로구에 복원된 상태로 남아 있는 고급 저택 '경교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는 대공황이 찾아와 우리나라 농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졌는데요. 당시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로 대부분 국민이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자기 땅을 잃고 남의 땅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소작농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황금만 찾아낸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너도나도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팠습니다. 그 결과 1년 동안 5000개가 넘는 금광이 만들어졌어요. 금광이 아니더라도 일단 광산부터 만들어 놓는 사람들도 있었죠.

1934년 전국 광부는 45만명에 달했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금을 캐내려는 사람들까지 하면 더 많았습니다. 채만식의 수필 '황금무용론'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돈, 황금 얼마나 좋은 것이냐. 얼마나 위력이 있는 괴물이냐.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부르짖는다.' 이런 글을 쓴 채만식조차도 형제들과 돈을 모아 금광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콩밭·구들장에서 금을 찾던 시대

하지만 당시 금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금 따는 콩밭'은 이런 시대상을 잘 반영합니다. 농사를 지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어떻게든 금을 캐내서 가난을 면해보겠다고 애쓰다가 결국 멀쩡한 콩밭만 망친다는 내용이에요. 콩밭에서 금을 찾으려고 한 것이죠. 금을 찾으려고 집 구들장을 파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의 금니를 빼서 훔쳐가는 사건도 벌어졌다고 해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금에 집착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사람은 제대로 교육받기도 어려웠고, 출세의 길은 좁기만 했습니다. 부자가 될 가능성은 더욱 적었지요. 황금만 찾을 수 있다면 모든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금광 찾기에 열중하도록 한 것입니다.

황금광 시대도 금본위제의 종말과 함께 저물어갔어요. 태평양전쟁을 앞둔 일본 정부는 1941년 금 매입을 멈췄고, 금을 캐낼 이유는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금값이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금이 그 자체로 너무 귀중해서일까요, 아니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만들어낸 결과일까요?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