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손가락 모두 붙어 발가락으로 삯바느질… 조선 후기 서민들의 '치열한 삶' 이야기
입력 : 2026.02.09 03:30
추재기이
조수삼 지음|허경진 옮김|출판사 서해문집|가격 9500원
책에는 거지, 기생, 도둑, 악사, 약재상, 장애인, 소금 장수, 낚시꾼, 상여꾼, 등짐꾼, 갓 만드는 사람 등 총 71명이 나옵니다. 조선 사회에서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삶과는 다르게 사는 '이상한' 사람들이죠.
자주 굶는 한 물지게꾼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가여워 밥을 먹이곤 했지요. 가뭄이 들고 마을의 우물과 샘물이 말라 버리면, 물지게꾼은 한밤중에 산으로 올라 누워 기다리다가 샘물이 차오르면 새벽에 물을 길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밥 얻어먹은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리 저는 한 장애인은 안경알을 갈고 닦는 일로 먹고살았습니다. 종일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택한 직업이죠. 그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다가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안경을 갈고 닦는 법을 깨닫게 되지." 달과 안경알은 모두 둥근 모양이고, 안경알을 갈고 닦는 일이 달을 보며 마음을 갈고 닦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손가락이 모두 붙어버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절구질도 다듬이질도 발가락으로 해냈습니다. 밤이면 발가락으로 삯바느질을 해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책에 소개되는 인물 중 한 명인 김호응은 서쪽 한강에서 배를 운행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려운 이를 돕는 의협심이 깊었습니다. 길에서 말썽이 일어나면 늘 약한 사람 편을 들었고 때로는 자기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그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옳지 못한 짓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추재기이'에는 형편이 어렵고 조건이 불리하지만 전문적인 기술이나 재주를 익혀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신분도 낮고 사람들이 낮춰 보는 일을 하지만, 노력으로 삶을 당당히 꾸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추재기이'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을 기록한 위인전은 많지만, 사실상 잊힌 보통 사람들을 기록한 책은 매우 드뭅니다. 조수삼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조선 후기 보통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하루 삶도 미래의 이야기이자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