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산 이야기] 신령스러운 '달이 걸리는 산'… 신라 부활을 꿈꾸며 세웠던 불상 남아있대요
입력 : 2026.02.09 03:30
월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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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악산에서 등산객들이 설경을 바라보고 있어요. /영상미디어
월악산 남쪽 산줄기에는 '하늘재'라는 고개가 있어요.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고개로, 중부와 영남 지방의 통로였습니다. 고려 말까지는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조선 초에 다른 고개인 '새재'가 개통되며 하늘재는 쇠퇴했어요. 하늘재 기슭의 '미륵대원지'는 이곳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미륵대원이 대형 사찰로 번창했지만, 하늘재 역할이 쇠락한 조선 초 이후엔 빈터만 남았죠.
역사서를 살펴보면 하늘재가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몽골군이 쳐들어와 고려군이 충주에서 패하고 월악산으로 피해 진을 쳤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치고 우박이 쏟아졌다고 해요. 몽골군은 월악산에서 산신령이 고려군을 돕는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해요.
월악산을 둘러싸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장남 마의태자와 딸 덕주공주가 신라의 부활을 꿈꾸며 지금의 강원도 오대산으로 가던 중 두 사람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월악산에 불상을 세우라'고 전했다고 해요. 마의태자는 미륵사(미륵대원)에 석조여래입상(보물 96호)을 만들고, 덕주공주는 덕주사를 세워 마애여래입상(보물 406호)을 만들었답니다. 이후 마의태자는 8년을 미륵사에서 지내다 오대산으로 떠나고,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머물다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다만 마의태자는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이지만, 덕주공주는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덕주사 창건 기록 등으로 전해지는 설화 속 인물이랍니다.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은 산세가 험악해 산행이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요. 월악산도 그렇습니다. 영봉을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월악산은 계단이 너무 많아서 히말라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더라"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