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 미술관 산책

세 명의 여성, 20대 관장이 키운 현대 미술 중심지

입력 : 2026.02.09 03:30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입니다. 모마는 1939년부터 지금 위치에 자리 잡았어요. /뉴욕현대미술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입니다. 모마는 1939년부터 지금 위치에 자리 잡았어요. /뉴욕현대미술관
'대체 이게 미술이 맞아?' 미술관에 갔다가 이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 있지 않나요?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앞에 서면 누구나 당황합니다. 현대미술은 무엇을 그렸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바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대신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너는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니?" 하고요.

뉴욕 현대미술관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불립니다. '모마(MoMA·Museum of Modern Art)'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 가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많이 만나게 돼요. 지금부터 모마 이야기를 천천히 살펴볼게요.


"미국에도 유럽처럼 현대미술관을 만들자"

모마는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 한가운데 있어요. 이 세계적 미술관의 출발점에는 세 여성이 있었습니다. 1929년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메리 퀸 설리번, 릴리 P. 블리스는 "유럽에 뒤지지 않는 현대미술관을 미국에도 만들자"는 목표로 손을 맞잡았어요. 이들은 모두 당대 미국을 대표하는 부호 가문의 부인이자, 적극적인 미술 컬렉터였죠.

출발은 순탄치 않았어요. 개관을 열흘 앞두고 뉴욕 증시가 붕괴되며 대공황이 시작됐기 때문이에요. 미국 사회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부유층도 예외는 아니었죠. 결국 모마는 넉넉한 후원금도, 전용 건물도 없이 출발해야 했어요. 개관 당시 미술관은 임차한 건물에서 개인 소장가들에게 빌린 작품으로 첫 전시를 열었어요.


젊은 관장의 안목

세 창립자는 미술관의 미래를 책임질 초대 관장으로 당시 겨우 27세였던 젊은 미술사학자 알프레드 H. 바를 발탁했어요. 안정 대신 미래를 택한 결정이었죠.

바 관장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어요. 개관 첫해에만 일곱 차례의 기획전을 열었고, 1년 만에 관람객 20만명을 끌어모았습니다. 뉴욕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한 거였죠.

그는 무려 38년 동안 모마를 이끌며, 현대미술의 기준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어요. 회화와 조각에만 머물지 않고 사진·디자인·건축·영화까지 미술관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핵심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했습니다. 오늘날 모마의 주요 상설전시 공간 일부가 '알프레드 H. 바 갤러리'로 불리는 이유예요.

모마는 후원과 기부를 바탕으로 현재 소장품이 20만 점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성장했어요. 그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대표작이 바로 피카소의 1907년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이에요. 이 작품은 1936년 열린 피카소 뉴욕 회고전에 출품됐는데,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던 바 관장은 기존 소장품을 처분하면서까지 이 그림을 구입했대요. 훗날 이 작품은 서양미술사에서 입체파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게 됐죠.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명화예요. 1889년 5월 고흐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는데, 한 달쯤 지나서 병실 창문을 통해 본 시골 풍경을 그렸어요. 건강을 잃은 데서 오는 우울함과 그림에 대한 솟구치는 욕망을 소용돌이치는 듯한 밤하늘로 표현했어요.

'캠벨 수프 캔'은 팝아트의 황제로 불리는 앤디 워홀의 초기 대표작이에요. 1962년 워홀은 자신의 전시회에 통조림 캔을 그린 32점의 작은 캔버스를 전시했어요.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상품 디자인 같다며 조롱과 멸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모마의 대표 소장품이자 팝아트의 아이콘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지요.

나무 의자에 자전거 바퀴가 거꾸로 놓여 있는 '자전거 바퀴'(마르셀 뒤샹), 거대한 낙서같이 보이는 '하나: 넘버 31, 1950′(잭슨 폴록) 등 모마의 작품들은 정답을 가르쳐주는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 앞에 멈춰 서서 상상해 보기를 권하죠.


생소한 작품과 명작을 나란히 전시

2019년 리모델링 이후 모마의 전시 방식에는 변화가 나타났어요. 그동안 미술사에서 소외되거나 저평가됐던 작가들의 작품이 명작들과 나란히 전시되기 시작한 거죠.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답니다.

메레 오펜하임의 1936년 작품 '오브제'는 모마가 구입한 최초의 여성 작가 작품이에요. 찻잔과 숟가락에 털을 씌운 이 작품은 일상의 사물이 가진 기능을 지워버리고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요. 스위스 출신인 오펜하임은 파리 유학 시절 한 카페에서 피카소와 털에 관한 농담을 나누다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해요. 이 작품은 만들어진 해 바로 모마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전시'에 소개된 뒤 곧바로 소장품이 됐고, 당시 23세였던 오펜하임은 이 작품 하나로 '모마의 영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어요.

멕시코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프리다 칼로의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1940)이나, 최초의 여성 누드 자화상을 그린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왼손으로 두 송이 꽃을 든 자화상'(1907)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여성 화가들 작품도 반 고흐의 그림과 같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어요.


6층 건물에 펼쳐진 현대미술

모마는 설립 10년 만인 1939년 새 건물을 지어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아요. 이후 늘어나는 소장품과 관람객에 대응해 여러 차례 증·개축도 거쳤습니다. 현재 모마는 지상 6개 층을 중심으로 근대미술에서 동시대 미술까지 보여줘요. 1층에는 로비와 아트리움, 디자인 스토어, 카페 등 관객 편의 시설이 있고, 설립자 중 한 명 이름을 딴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 정원'은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해요.

2·3층에는 1970년대 이후 만들어진 현대미술이, 4층에는 1940~1960년대 미술이 전시돼 있어요. 모마 컬렉션의 핵심 축인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도 4층에서 만날 수 있어요. 5층에서는 반 고흐, 피카소, 몬드리안, 마티스 등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19·20세기 미술 대표작을 대거 만날 수 있어요. 6층은 특별전이 있을 때만 개방해요.

미술관의 수준은 소장품의 질을 결코 넘어설 수 없어요. 모마는 뉴욕에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질문과 전환점을 품은 작품들을 꾸준히 축적해 왔기 때문에 존중받아요. 모마는 오늘도 세계 현대미술관의 롤모델로 남아 있어요.

이은화 미술평론가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