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둘로 분열된 '소말리족'… 식민 지배가 남긴 상흔이죠
입력 : 2026.02.04 03:30
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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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소말릴란드 공식 국가 인정 촉구 집회에서 소말릴란드 출신 여성이 소말릴란드 국기 문양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최근 소말릴란드를 하나의 국가로 공식 승인해 국제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어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15국 중 14국은 이를 규탄했습니다. 아프리카연합(AU)과 서아시아 국가들도 강하게 반발했어요. 이 선택이 국제 정세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소말릴란드와 소말리아는 어쩌다 분열됐을까요?
남은 이탈리아, 북은 영국
소말리아는 홍해와 아덴만이 만나는 곳에 있어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인도양과 지중해를 잇는 중요한 항로가 지나는 지역이죠. 비옥한 환경은 아니지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고대부터 아프리카 교역과 군사 전략의 중심지였어요. 이 지역에는 소말리족이 살았는데요.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7세기쯤 소말리아 지역에 이슬람교가 전해졌죠.
중세 이후 오스만 제국과 유럽이 홍해 일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지역 부족장이나 이슬람 지도자들의 자치권이 유지되면서 외부 세력의 지배는 제한된 수준이었어요. 19세기 후반이 돼서야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경쟁 속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됐습니다. 이때 소말리아 북부는 영국령 소말릴란드로, 남부는 이탈리아령 소말리아가 됐어요.
영국과 이탈리아는 소말리아 통치 목적이 달랐어요. 이탈리아는 소말리아 남부를 농업 식민지로 개발했어요. 소말리아를 직접 통치하면서 인프라를 조성하고 이탈리아어까지 가르쳤죠. 영국은 소말리아 북부를 전략적 거점으로 여겼습니다. 홍해 건너 예멘의 아덴항에 영국의 해군 기지가 조성돼 있었는데, 이곳에 신선한 육류를 공급할 목초지로 소말리아를 활용했죠. 소말리아 북부는 '아덴의 정육점'이라고 불렸어요. 영국은 소말리아에 대한 통치를 최소화하면서 교육이나 인프라 투자 없이 부족장들과 조약 체결을 통해 필요한 것만 얻어냈어요. 식민 지배가 이뤄진 약 100년 동안 소말리아 남부와 북부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죠. 그 결과 행정 제도와 교육·법 체계가 서로 달라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남북 격차로 무너진 대(大)소말리아주의
아프리카 17개국이 한꺼번에 독립한 1960년을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러요. 소말리아도 아프리카의 해에 독립했습니다. 1960년 6월 26일 영국령 소말릴란드가 먼저 독립했어요. 며칠 뒤인 7월 1일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도 독립했죠. 이날 두 지역은 자발적으로 합쳐 소말리아 공화국이 됐어요.
당시 소말리아 사람들은 '소말리아족이 하나의 나라로 뭉치자'는 대(大)소말리아주의를 꿈꿨지만, 통합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정치 권력이 남부 중심이었거든요. 수도는 남부의 모가디슈로 정해졌고, 대통령과 총리 등 핵심 요직도 남부 출신이 차지했어요. 개발 예산 역시 남부에 집중됐죠. 북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들이 남부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불만까지 갖게 됐어요.
상황은 시아드 바레 정권이 등장하면서 더욱 악화했어요. 1969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시아드 바레는 북부 지역에 대한 군사 탄압을 강화하고 북부의 자치권을 억압했어요. 이에 북부 주민들은 1980년대 소말리아 민족해방군(SNM)을 결성해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바레 정권은 그 보복으로 북부 지역을 폭격하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죠. 특히 1988년 북부 중심지 하르게이사 폭격은 이 도시의 90%를 파괴하고, 민간인 수만 명을 희생시켰어요. 이 사건은 북부와 남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경제난과 독재 통치로 민심을 잃은 바레 정권이 1991년 무너지면서 소말리아 중앙 정부가 몰락했어요. 소말릴란드는 북부 도시 부라오에 모여 독립을 선언했죠. 소말릴란드는 이를 '분리 독립'이 아니라 '1960년 6월 26일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 독립을 인정받지 못할까?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소말리아의 내전과 해적, 기근 소식의 근원지는 남부 소말리아예요. 남부 소말리아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정식 국가이지만 여전히 정치 불안과 무장 세력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어요.
반면 소말릴란드는 부족들끼리 무장 해제를 합의했고, 원로 회의인 '구르티'를 중심으로 정치 질서를 세웠어요. 1994년에는 '소말릴란드 실링'이라는 독자적 화폐를 만들었고, 1996년에는 자체 여권을 발행했으며, 2001년에는 자체 헌법까지 제정했어요. 경찰과 군대를 갖춰 비교적 안정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어요. 지난 20여 년간 대통령 선거를 수차례 평화롭게 치러내면서 아프리카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기도 하죠.
그렇다면 왜 국제사회는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공식 승인하지 않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말릴란드 독립을 인정해 버리면 나이지리아, 카메룬, 모로코 등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리주의(중앙 정부로부터 특정 지역이 독립하려는 것) 운동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에요. 분리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소말릴란드가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조금씩 변화도 생기고 있습니다. 2024년 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에 손을 내밀었어요. 내륙에 있어 항구가 필요한 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의 베르베라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해안선 20㎞를 50년간 임대하기로 계약한 것이죠. 이스라엘의 경우, 홍해 안보 기지가 필요해 지난해 말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승인한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