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지휘봉으로 박자, 다른 손으론 섬세한 표현 지시해요

입력 : 2026.01.26 03:30

지휘자

지난달 30일 KBS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서 정명훈 지휘자와 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를 마친 뒤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KBS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서 정명훈 지휘자와 악단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를 마친 뒤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한국을 대표하는 교향악단 두 곳이 새 지휘자를 맞이했습니다. 올해 창단 70주년인 KBS교향악단은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정명훈 지휘자를 선임했어요. 그가 1998년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에서 사임한 후 28년 만에 복귀하는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에서 동시에 두 악단을 이끌게 되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7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로베르토 아바도도 최근 취임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로베르토 아바도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난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카입니다. 아바도 가문은 소문난 음악 가족이지요. 로베르토 아바도는 유럽과 미국의 여러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은 지휘자에요.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와 발레 공연까지 담당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침묵으로 악단의 모든 것을 결정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이 열리는 무대 위. 8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 대규모 합창단, 독창자 네 명이 함께 1시간에 이르는 긴 곡을 연주합니다. 이때 없어선 안 될 단 한 사람, 바로 지휘자입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오페라단, 발레단 등 모든 음악 단체를 이끄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무대 위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제해요. 연주의 템포(빠르기)를 정하고 음악을 어떻게 해석할지 방향을 정합니다. 각 파트가 나오는 곳과 멈추는 곳을 알려줘서 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연주하게 하고, 음악의 강약·뉘앙스 등을 지시해요. 지휘자들은 '포디엄'이라 불리는 지휘대에 올라 지휘할 때 지휘봉이나 손동작을 사용하는데, 때로는 몸짓과 표정까지 활용합니다.

지휘자는 무대 아래에서도 많은 권한을 가집니다. 연주 곡을 고르고, 협연자를 선발하지요. 오케스트라의 악장(단원 대표)과 악기별 수석 연주자를 결정하고, 연주자의 자리를 바꾸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현악기 주자가 활을 사용하는 방법인 '보잉'도 정해줘요. 지휘자는 '음악감독'이라고도 불리며, 악단 운영과 관련한 행정에도 참여할 정도로 큰 권한을 가집니다.



지휘자의 상징, 지휘봉

음악사에서 지휘자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쯤 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지휘자가 하프시코드(기타의 피크 같은 장치로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함께 연주하면서 악단을 지휘했어요.

오페라나 발레 같은 대규모 공연에서는 특별한 지휘봉이 쓰였는데요. 마치 산신령 지팡이처럼 생긴 1.5m 길이의 나무 지휘봉입니다. 이것으로 바닥을 쿵쿵 내리치며 박자를 맞췄죠. 프랑스의 루이 14세 궁정에서 왕실 음악가로 일하던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도 그랬어요. 역설적이게도 륄리는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던 거대한 지휘봉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죠. 지휘 중 실수로 지팡이로 자신의 발을 찧었는데, 그 상처가 곪아 합병증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과 비슷한 지휘봉을 최초로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19세기 초 독일의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가 그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지금보다 굵긴 하지만, 플루트나 둘둘 만 종이처럼 생긴 원통형 지휘봉을 흔들며 지휘했죠.

지금은 길고 가느다란 지휘봉을 오른손에 들고서 기본 박자를 표현하고, 왼손으로는 섬세한 표현을 지시합니다. 종종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하는 지휘자도 있어요. 이들은 주로 합창 지휘자들입니다. 음절이 많은 가사를 지시하거나 양손으로 섬세한 표현을 지시하기 위해서 맨손 지휘를 하지요.



열네 단 악보를 한 눈에

지휘자는 지휘자용 악보인 총보(스코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악보 위쪽부터 목관악기군, 금관악기군, 타악기군, 독창자와 합창단, 현악기군이 나열된 열네 단이 넘는 악보를 한꺼번에 봐야 해요. 또 각 파트의 소리를 들으면서 전체가 어우러지게 만들어야 하죠.

이 외에도 오케스트라 악기에 대한 깊은 이해, 예민한 음감, 처음 본 악보를 바로 치거나 노래할 수 있는 시창 능력이 요구되며, 악보를 보고 머릿속으로 소리를 상상해 낼 수도 있어야 하죠. 악단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단원들을 인솔하고 단결시키는 능력도 필요하고, 자신의 해석을 설명하고 설득하며 연주자의 실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지휘자가 되는 길

그렇다면 지휘자가 되려면 어떤 길을 거쳐야 할까요?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가장 많은데요. 레너드 번스타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다니엘 바렌보임, 김선욱, 정명훈처럼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도 많지요. 19세기에는 슈트라우스 부자가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활을 지휘봉 삼아 악단을 지휘했는데, 이런 방식을 '포어가이거(Vorgeiger)'라고 부릅니다. 악단 '앞에서(vor)' 연주하며 이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가 좋은 예시예요.

겨우 열아홉 살에 세계 최고 악단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에 임명돼 주목받은 바이올리니스트 얍 판 즈베덴은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많은 이유로는 오케스트라에 현악기 연주자가 가장 많다는 점이 꼽힙니다.

그 외에도 첼리스트였던 장한나와 로스트로포비치, 타악기 연주자였던 사이먼 래틀, 작곡가였던 피에르 불레즈, 트럼페터였던 안드리스 넬손스도 지휘자가 됐습니다.


김지현 작가·'클래식을 읽는 시간' 저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