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조선 시대 아동들은 '동몽선습' 서양에선 '성경'으로 공부했어요
입력 : 2026.01.20 03:30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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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8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과서를 들고 웃고 있어요. /김동환 기자
1895년 고종은 '교육 입국 조서'를 발표했어요. 교육 입국 조서에는 오늘날 국가 교육과정처럼 교육 목표, 학년별 교육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기진 않았습니다. 다만 기존 유교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근대적 학문을 널리 가르치고자 했죠. 이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실용적 교육을 하고자 한 것은 근대 이후입니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국가에서 세운 기관을 통해 유교 교육이 이뤄졌어요. 이곳에서 유교 경전을 읽고, 한문을 익혔으며, 신체를 단련하기도 했죠. 고려와 조선의 수도에는 국자감이나 성균관 같은 교육 기관이 있었어요. 이 시기에는 사학, 서원, 서당 등 개인이 학문을 가르치는 사교육이 등장하기도 했죠.
조선 사람이라면 양반부터 서민까지 공통으로 배우는 책이 있었는데요. 바로 '동몽선습'입니다. 동몽선습은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박세무와 민제인이 아동을 위해 쓴 교재예요. 아이들이 천자문을 배운 후 반드시 학습했던 책이죠. 이 책은 유교의 핵심 가치인 오륜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썼어요. 동몽선습은 왕실에서도 왕세자 교육을 위해 활용했습니다.
근대 이전 서양에서는 수도원이 교육을 담당했어요. 수도원에서는 종교에 대해 교육했을 뿐 아니라, 산수·천문학·음악 등도 가르쳤어요. 가장 중요한 교과서는 성경이었죠. 11세기 이후에는 고대 그리스 윤리서들이 중세 유럽에도 전해져 신학과 철학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어요.
1817년 인도에는 교과서를 만들려는 교과서 협회가 세워지기도 했어요. 당시 인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영국도 이 협회에 자금을 지원했어요. 그 결과, 교과서 협회는 인도 문학 작품을 영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해 1821년까지 책·팸플릿 12만권 이상을 출판했답니다. 인도 학생들은 이 시기에 영어를 배우게 됐고, 영국은 이 협회 덕분에 비슷한 교육 방법을 여러 학교에 도입할 수 있었죠.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이후 1949년에 발표한 교육법에 따라, 국정 교과서를 학교에서 사용하게 됐어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6·25 전쟁으로 교과서 출판과 보급이 원활하지 않게 됐죠. 정부는 전쟁 중 피란 학교를 세워 교육을 계속했는데, 이때 특별한 교과서인 '전시 교재'가 등장했습니다. 전시 교재에는 '침략자는 누구냐' '자유와 투쟁' 같은 제목을 가진 사상 교육이 담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