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AI 로봇이 일깨우는 '특별한 당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입력 : 2026.01.08 03:30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1만7000원
이야기의 배경은 과학 기술로 아이들의 지능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시술이 보편화된 미래입니다. 학교 대신 집에서 원격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늘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클라라는 자신을 데려갈 아이를 백화점에서 기다리던 중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몹시 야윈 소녀 '조시'를 만납니다. 조시는 지능 향상 시술의 부작용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지요. 클라라는 한눈에 이 위태로운 아이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봅니다.
조시의 집으로 간 클라라는 헌신적인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조시의 병세는 깊어만 가고,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엄마는 클라라에게 잔인한 부탁을 합니다. 만약 조시가 죽으면 클라라가 조시의 말투와 행동, 기억을 완벽하게 학습해 '제2의 조시'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시와 겉모습까지 똑같이 만든 껍데기 속에 클라라가 학습한 정보를 넣어 딸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계획이었죠.
하지만 클라라는 '조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한 존재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든 추억과 감정이었던 것이지요. 가짜 조시가 되기를 거부한 클라라는 조시를 살리기 위해 기적을 찾아나섭니다.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로봇인 클라라에게 태양은 신과 같습니다.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위해 머릿속에 있는 핵심 부품을 바치면서까지 태양에게 기도합니다.
태양이 클라라의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기적처럼 조시는 건강을 되찾고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떠납니다. 낡고 기능이 다한 클라라는 고철 처리장에 남겨집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로봇이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비극적 결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클라라는 놀랍도록 평온합니다. 조시를 사랑하고 지켜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살면서 스스로가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만큼 공부 잘하는 애는 많아" "너보다 예쁜 애는 많아" 같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나 자신의 고유함을 의심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 책은 차가운 기계의 입을 빌려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당신이 소중한 이유는 능력이나 외모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당신이 유일한 존재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클라라가 남긴 다정한 온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