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위인과 정신 건강] 악보에 '마음의 파도' 옮긴 작곡가… 빛·그림자 공존하는 음악 만들었죠
입력 : 2025.12.16 03:30
로베르트 슈만과 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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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맑을 때가 있고 흐릴 때가 있죠.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은 상쾌한데, 어느 날은 무기력해요. 슈만은 마음의 변동이 보통 사람보다 더 심했대요.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았던 거지요.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뜨고 에너지가 넘칠 때는 짧은 기간에 곡을 쏟아내며 음악사에 남는 작품을 많이 남겼어요. 하지만 우울한 시기가 오면 악보를 펼쳐도 한 음도 쓸 수 없었죠.
슈만은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젊은 음악가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좋은 음악을 알리고 싶어 했지요. 음악 평론가로서 두 개의 필명을 썼는데,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름이었어요. 열정적이고 들뜬 상태일 때는 꽃 피다라는 뜻의 라틴어 'florere'와 비슷한 '플로레스탄(Florestan)'을, 조용하고 어두운 마음 상태일 때는 경건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eusebeia'를 딴 것으로 추정되는 '오이제비우스(Eusebius)'를 썼어요. 자신의 기복을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필명을 붙였던 거예요.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슈만은 젊은 시절 유명한 선생님 집에서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는 스승의 딸 클라라와 함께 피아노를 연습하고 연주를 들으며 사랑에 빠졌어요. 하지만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인 비크는 슈만의 건강 상태와 불안한 장래를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어요. 결국 슈만과 클라라는 법정 싸움 끝에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법적으로 부모님(친권자) 동의가 있어야 결혼이 가능했는데, 비크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하지만 슈만의 조울증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어요. 그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했고, 환청을 듣기도 했어요. 결국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구조된 이후에는 정신 요양 시설에서 지내다가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슈만에게 조울증은 삶의 일부였으며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깊은 우울의 골짜기를 지나면 에너지 넘치는 조증의 파도가 있었기에, 그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죠. 우리는 그의 음악을 들을 때 아름다운 멜로디만 듣는 것이 아니에요.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음악을 버리지 않으려 했던 한 인간의 시간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