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서로 체온 나누며 빙하기 버틴 인류… '강함' 아닌 '다정함'으로 생존했죠

입력 : 2025.12.11 03:30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재밌다, 이 책] 서로 체온 나누며 빙하기 버틴 인류… '강함' 아닌 '다정함'으로 생존했죠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이민아 옮김출판사 디플롯|가격 2만2000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이나 옆에 있는 친구의 눈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눈동자 주변에 하얀색 '흰자위'가 보일 겁니다. 침팬지나 고릴라의 눈을 유심히 본 적 있나요? 그들 눈은 흰자위가 거의 없이 온통 짙은 갈색이거나 검은색이죠. 왜 인간은 유독 눈에 띄는 흰자위를 가졌을까요?

동물 세계에서 어디를 보는지 들키면 바로 죽음입니다. 누구를 공격할지, 어디로 도망칠지 적에게 간파당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반대였습니다. "나 지금 저쪽을 보고 있어", "내 생각은 이래"라며 마음을 드러내는 쪽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 법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틀렸다.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가장 다정한 자였다."

증거는 명백합니다. 수만 년 전 지구에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네안데르탈인이라는 또 다른 인류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뇌 용량도 크고 근육질 몸을 가진 '인간 병기'였습니다. 하지만 멸종한 건 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며 친구가 됐고, 지식을 나누며 협력했습니다. 힘센 네안데르탈인이 고립된 채 추위와 배고픔 속에 사라져갈 때, 약한 우리는 체온을 나누며 빙하기를 견뎌냈습니다.

늑대와 개의 운명도 같습니다. 인간을 피해 숲으로 숨은 사나운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인간에게 다가온 '다정한 늑대'는 개로 진화해 가장 번성한 동물이 됐죠. 공격성을 줄이고 다정함을 택한 종이 멸종을 피한 겁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요? 다정한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이 왜 학교에서는 친구를 따돌리고, 온라인에서는 악플을 달며, 전쟁을 일으키는 걸까요? 저자는 그 이유도 다정함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정함은 우리 편인 사람들에게만 작동하는 반쪽짜리여서죠. 가족, 친구, 동료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외부인에게는 잔인해집니다. 공감 능력 스위치를 꺼버리고 상대를 벌레나 짐승 취급하면서 공격하는 겁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혐오도 깊어지는 슬픈 딜레마인 셈이죠.

혐오와 폭력이 넘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생김새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 내 편으로 만드는 것만이 멸종을 피하는 길입니다.

이 책은 '착하면 손해를 본다'는 차가운 세상에 건네는 과학적 위로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작은 다정함이 빙하기 인류를 구해낸 것처럼 당신의 세계를 구원할지도 모릅니다. 살아남고 싶다면 다정해지세요. 
이진혁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