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옛날 옛적에"라고 하지만… 우리 동화 역사는 길지 않죠

입력 : 2025.12.11 03:30

전래 동화

1913년 한글 전래 동화 ‘바보 온달이’가 실린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 ‘바보 온달이’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글 전래 동화 중 가장 오래됐어요. /국립한글박물관
1913년 한글 전래 동화 ‘바보 온달이’가 실린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 ‘바보 온달이’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글 전래 동화 중 가장 오래됐어요. /국립한글박물관
서울 노원문화원은 최근 노원구의 지역 전래 동화를 담은 그림책 '우리 동네 옛날 이야기'를 발간하면서, 책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었다고 해요. 전남 목포의 목포문학관에선 전래 동화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전래 동화 문화 체험'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대요.

보통 '옛날 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되는 전래 동화는 '신화나 전설 같은 옛 이야기에서 발전해 만들어진 동화'를 가리킵니다. 사실 조선 시대 때만 해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童話)라는 문학 분야가 없었대요. 전래 동화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는 얘기죠.


첫 한글 전래 동화는 1913년 '바보 온달이'

우리가 아는 전래 동화 중에서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보 온달 이야기'나 '토끼의 간',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 신화'처럼 기원이 까마득한 고대로 올라가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하지만 의외로 100~200년 전쯤 만들어진 전래 동화도 적지 않습니다.

1913년 시인 최남선이 창간한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에 실린 '바보 온달이'가 지금까지 확인되는 한글 전래 동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아동운동가 방정환은 1922년 잡지 '개벽'에 '조선 고래(古來) 동화 모집'이란 광고를 냈죠. 조선의 옛날 동화를 모은다는 뜻입니다. 이 광고에서 '동화는 그 민족성과 민족의 생활에 근거하고 거기서 흘러나와 다시 그것이 민족 근성을 굳건히 하고 새 물을 주는 것(새 힘을 불어넣는 것)'이라며 전래 동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우리나라 전래 동화만 모은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1924년 총독부가 국내 첫 전래 동화집 출간

아동문학가 손동인(1924~1992)은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날 간행되는 각종 전래 동화집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3대 전래 동화집과 만나게 된다." 전래 동화의 '원전(기준이 되는 고전)' 격인 '3대 동화집'이 20세기 초에 존재했다는 겁니다. 이 3대 동화집은 1924년 나온 '조선동화집'과 1926년의 '조선동화대집', 1940년의 '조선전래동화집'이었어요. 한동안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이 책들은 2000년대 들어 모두 실물 자료가 발굴되면서, 이젠 그 내용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1924년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전래 동화집인 '조선동화집'은 누가 펴낸 책일까요? 놀랍고 안타깝게도 일제 침략의 사령탑이었던 조선총독부였습니다. 오다 쇼고를 비롯한 총독부 학무국 관리와 학자들이 조선 민담을 채집해 25편을 엮은 뒤 일본어로 출간했어요. 이 책에서 '물 속의 구슬'(의좋은 형제), '혹 떼이기 혹 받기'(혹부리 영감), '종을 친 까치'(은혜 갚은 까치), '겁쟁이 호랑이'(호랑이와 곶감) 같은 이야기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이 당초 식민 통치에 이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인 만큼 한계가 있었습니다. 권혁래 용인대 교수는 "이 책 동화 속에는 '유순'이나 '친절'처럼 일본 특유의 미덕이 유독 강조되는데,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이 착하고 순종적으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초의 한글 전래 동화집, 내년이 100주년

내년은 첫 한글 전래 동화집이 나온 지 100년이 됩니다. 1926년 출간된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이에요.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 교사였던 심의린은 83편을 채집해 수록했죠. 광복 전후 나온 전래 동화집에서 가장 많이 실렸던 '도깨비 방망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은혜 모르는 호랑이' 등의 원형을 담고 있습니다.

'멸치의 꿈'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수록됐어요. 동해에서 3000년 동안 도를 닦은 멸치가 어느 날 "하늘에 올라도 보고 땅에 떨어져도 보고, 덥다가 춥기도 하고, 흰 눈이 날리기도 하는 꿈을 꿨다"며 용이 될 것 같다고 하자 가자미가 이런 해몽을 합니다. "낚시에 잡혀 석쇠에 굽히면서 부채질을 당하고 소금이 뿌려지는 꿈이잖아!" '조선동화대집'의 일부 동화에는 자동차, 인력거, 전보 등도 등장하는데 이는 근대 이후에 나온 동화로 보입니다.

독립운동가 박영만이 전국을 돌며 수집한 이야기들을 모아 1940년 펴낸 '조선전래동화집'은 한국의 '페로 동화집(프랑스 샤를 페로가 정리한 동화집)'이나 '그림 동화집(독일 그림 형제가 정리한 동화집)'이란 평가까지 나와요. 75편 동화 중 60편 이상을 이북 지역에서 채집했는데 공포물인 '장화 홍련', 인류 탄생 신화라 할 수 있는 '계수나무 할아버지' 등 장르도 다양합니다. '툴렁툴렁', '오독똑오독똑' 같은 생생한 의성어와 구어체도 잘 살아 있죠. 이 책은 '전래 동화'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동화집이기도 합니다.

1927년 한충이 낸 '조선동화 우리동무'란 책도 있는데요. 모두 30편의 이야기가 실렸고, 심의린·박영만의 책과 함께 '3대 한글 전래 동화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원래 이야기'

그런데 어린이 여러분이 이 '원전' 격인 책들을 읽는 것을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아직 어린이들을 위해 순화되기 전의 '날것' 같은 이야기가 일부 들어 있기 때문이죠.

가령,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를 만난 엄마는 고개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먹혀요. 또 '콩쥐 팥쥐'에서 콩쥐가 사또 아들(사실은 사또 본인)과 결혼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가 끝난다고 알고 있었다면, 이는 원전을 각색한 책을 봤기 때문입니다. 원전에서는 사또와 결혼한 콩쥐에게 앙심을 품은 팥쥐가 콩쥐를 죽이고, 사또가 팥쥐에게 복수를 하죠. 또 '장화 홍련'의 경우, 원전에 나오는 세부 묘사가 너무 엽기적입니다. 이건 서양 동화도 마찬가지인데요. '신데렐라' 원전에서는 주인공의 두 의붓언니가 신발을 억지로 신기 위해 칼로 자신의 발가락을… 아이고, 동심 보호를 위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