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그린란드서 '빙하 타임캡슐' 열어 기후 예측하는 여성 빙하학자 이야기

입력 : 2025.12.08 03:30

빙하 곁에 머물기

[재밌다, 이 책!] 그린란드서 '빙하 타임캡슐' 열어 기후 예측하는 여성 빙하학자 이야기
신진화 지음|출판사 글항아리|가격 1만8000원

과학자라고 하면 흔히 연구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실험하는 사람의 모습부터 떠오르지 않나요? 하지만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의 과학자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인 극지연구소 신진화 박사가 대표적이죠. 그는 2023년 그린란드 빙하를 뚫는 국제 연구 활동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여했어요. 그가 쓴 논문 제목도 흥미로운데, 바로 '19만~13만5000년 전 발생한 빙하기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천년 규모 변동'이랍니다.

빙하를 뚫는 것은 마치 타임캡슐을 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요. 빙하는 먼 옛날 지구 대기의 흔적을 품고 있기 때문이죠. 빙하학자는 건물 안 실험실이 아니라 지구라는 실험실에서 연구합니다. 그런데 왜 옛날 기후를 연구할까요? 현재 지구를 진단하고 미래 기후를 예측해보기 위해서예요.

"비행기의 꼬리 쪽 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눈에서 반사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빙상(대륙의 넓은 지역을 덮는 빙하)에 반사된 빛 때문에 마치 천국에 도착한 것 같았다. 실험하느라 냉동고에서 작업할 때 느꼈던 그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신진화 박사가 빙하 시추(구멍을 뚫는 일) 현장에 착륙하던 순간입니다. 연구 도중 틈틈이 눈 위에 누워, 등 아래 수백만 년 동안 쌓인 빙상을 상상하며 그린란드에 고마움을 건넸습니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 하고, 시추 캠프가 해발 고도 약 2700m 장소에 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만 일주일 넘게 걸립니다. 게다가 세계에서 지구과학 분야 여성 과학자 비율은 24%에 그칩니다. 그래서 여성 빙하학자가 현장에 파견되기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신진화 박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제외될 때도 있었지만, 악착같이 현장에 남아 연구 활동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를 지켜냈습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는 죽은 동식물의 유해가 오랜 세월 쌓이면서 생긴 겁니다. 이 같은 화석연료를 쓰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갇혀 지구의 평균 기온을 높이지요. 지구온난화로 가뭄과 홍수가 잦아지고 더위와 추위가 심해지며 극지의 얼음이 녹아 바다 수면이 높아집니다. 지구 생명체의 삶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랍니다. 극지의 빙하가 빠르게 녹는 것은 빙하학자에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책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오늘날처럼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던 적도, 지구 역사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한 적도 지난 80만년 동안 없었습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인간 활동이 불러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인간의 노력으로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진화 박사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전 지구인의 티끌 같은 노력을 모으면 태산이 될 수 있다. '지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