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아름다운 시절' 프랑스 담은 그림이 뉴욕서 왔어요

입력 : 2025.12.08 03:30

로버트 리먼 컬렉션

프랑스 수도인 파리에는 1889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탑(에펠탑)이 세워졌고, 1900년에는 파리에서 그 당시 최대 규모의 만국박람회(엑스포)가 열렸습니다.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은 일단 파리로 가서 기회를 잡고자 했죠. 덕분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탄생한 미술은 다양하면서도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림 속 그 시절 파리는 새로워진 거리와 우아한 옷차림, 그리고 세련된 취미 생활이 돋보이는 곳이었죠. 그림을 본 후대 사람들은 그때의 파리를 동경하며 '벨 에포크(Belle poque·아름다운 시절)'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미국 리먼 브라더스를 경영하는 금융 재벌 리먼 가문의 로버트 리먼은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 작품 2600여 점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지난 1969년 사망하면서 이 소장품들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했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명화 등 로버트 리먼 컬렉션 65점을 포함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81점을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어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란 전시를 통해서 말이죠.

카미유 피사로의 1897년 작품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 대로'예요.
카미유 피사로의 1897년 작품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 대로'예요.
아름다운 시절의 프랑스 파리

작품 ①은 덴마크 출신 화가 카미유 피사로(1830~1903)가 그린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 대로'입니다. 겨울 아침의 찬 공기가 느껴지고, 눈이 내린 듯한 거리 위로 마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로 양옆으로는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높이와 생김새가 비슷한 건물들도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거리 한가운데에는 가로등이 간격에 맞춰 서 있고요. 이런 질서 있고 깔끔한 거리 모습은 파리 도시 계획의 성공적인 결과였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어두침침하고 비좁았으며, 울퉁불퉁한 바닥은 더러운 하수로 질척거렸거든요.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파리의 대로를 보며 피사로는 감동으로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그는 이 모습을 더 잘 보려고 근처 호텔 꼭대기 층에 방을 잡아 풍경을 그렸어요. 덕분에 저 멀리까지 내려다보는 구도의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보는 방향을 바꾸면서 몽마르트 대로를 여러 번 그렸을 정도로 새로워진 파리의 경관을 즐겼습니다.

'꽃 피는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며 그린 작품입니다.
'꽃 피는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며 그린 작품입니다.
반 고흐가 그린 프랑스 시골 생활

그러나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화가도 있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 출신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입니다. 1886년에 파리로 넘어온 고흐는 2년간의 도시 생활에 지쳐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고 말았습니다. 1888년에 햇빛이 좋은 프랑스 남쪽 시골 마을인 '아를'로 이사하면서 그의 건강은 서서히 회복됐고 마음의 안정도 되찾았지요. 남부 지역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그는 하루 종일 지칠 줄도 모르고 그림에 몰두했어요. 색감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환해졌습니다.

작품 ② '꽃 피는 과수원'은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과수원 그림 중 하나예요. 구불구불 자란 나무에 흰 꽃이 피어 있고, 과수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잠시 놓고 간 듯한 긴 농기구 갈퀴도 보이네요. 이 무렵 동생에게 쓴 고흐의 편지에는 시골 생활을 반기는 이런 글귀가 남아 있답니다. "아침에 꽃이 핀 자두나무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별안간 강한 바람이 띄엄띄엄 불어왔어.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현상이었지. 태양에 비친 작고 흰 꽃들이 일제히 빛을 내더군. 정말 아름다웠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키스 반 동겐의 '경마장에서'. 이 작품은 1950년대에 그려졌지만 반 동겐은 20세기 초부터 경마장 모습을 자주 그렸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키스 반 동겐의 '경마장에서'. 이 작품은 1950년대에 그려졌지만 반 동겐은 20세기 초부터 경마장 모습을 자주 그렸어요.
중산층 인기 나들이 장소였던 경마장

작품 ③은 네덜란드 출신 화가 키스 반 동겐(1877~1968)의 '경마장에서'예요. 이 그림은 1950년대에 그린 것이지만 반 동겐은 20세기 초부터 파리 외곽 등지의 경마장 장면을 자주 그렸어요. 원색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야수파 화풍의 영향을 받은 반 동겐의 그림은 울긋불긋 선명한 색들로 시선을 끕니다.

프랑스에 철도가 놓인 19세기 중반부터 도시 사람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경마장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람들은 멋지게 차려입고 경치 좋은 교외로 나가서 경마 관람을 즐겼습니다.

경마장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사람들의 얼굴은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모자를 쓴 남녀 관객이 밀집해 있습니다. 그들은 달리는 말뿐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해요. 화면 아래쪽을 보세요. 주인을 따라온 흰 개와 검은 개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네요.

메리 커샛이 1900년에 이웃집 소녀 마고를 그린 작품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주은 교수
메리 커샛이 1900년에 이웃집 소녀 마고를 그린 작품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주은 교수
초상화가 보여주는 그 시절 사람들

작품 ④에서는 초록색 모자를 쓴 소녀가 보이는데, 미국 출신 메리 커샛(1844~1926)의 그림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입니다. 커샛은 아이를 아이답게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리는 데 뛰어난 화가입니다. 깜찍하게 옷을 입고 정원에 서서 마치 카메라 앞에 선 듯 앞쪽을 바라보는 그림 속 소녀는 커샛의 이웃집에 살던 '마고'예요. 커샛은 마고의 개인적인 특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시절 파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산층 집안의 소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마고를 그렸습니다.

커샛을 포함한 당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은 '근대 생활을 그리는 화가들'이라고 불립니다. 이 그림들에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여인, 피아노를 치는 소녀, 해변을 거니는 소녀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개성과 내면의 성품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초상을 통해 근대 사람들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그림이랍니다.

[명화 돋보기] '아름다운 시절' 프랑스 담은 그림이 뉴욕서 왔어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