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10대 소녀의 성장통 담은 일기… 전쟁 중에도 인간의 선함 믿었죠

입력 : 2025.12.04 03:30

안네의 일기

[재밌다, 이 책] 10대 소녀의 성장통 담은 일기… 전쟁 중에도 인간의 선함 믿었죠
안네 프랑크 지음홍경호 옮김출판사 문학사상|1만6800원

수도꼭지를 돌려서도, 화장실 물을 내려서도 안 됩니다. 걸을 때 발소리를 죽여야 하고,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죠. 이건 감옥 이야기가 아니에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감시를 피해 숨어 살아야 했던 열세 살 소녀 안네 프랑크의 실제 생활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침묵 속에서 펜 끝으로 써 내려간 시끄럽고 위대한 외침입니다.

1942년 여름, 안네의 가족은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건물 뒤편 비밀 공간으로 숨어듭니다. 책장으로 교묘하게 가려진 이 은신처에서 안네는 2년 넘게 생활합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갇혀 지내는 건 고통이었을 거예요. 두려움 속에서 안네를 버티게 해준 건 생일 선물로 받은 체크무늬 일기장 '키티'였죠.

안네는 일기장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적습니다. 좁은 은신처에서 어른들과 부딪치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면서도,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종이 위에 쏟아냈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책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편집해 출판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을 향한 안네의 거친 불만 등이 드러난 부분은 꽤 많이 삭제됐지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복원된 '완전판'을 펼치면 우리는 '전쟁의 희생양이 된 천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10대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일기 속 안네는 엄마의 잔소리에 반항하고, 이성에 대한 설렘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생생한 성장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안네의 꿈은 '유명한 작가'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안네는 훗날 책을 출판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엔 그동안 썼던 일기의 문장을 다듬고 구성을 편집했답니다.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던 수동적인 삶을 거부하면서 "(미래) 남편과 아이들 말고도 이 한 몸을 바쳐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얻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다졌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창밖의 파란 하늘에 감동하고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은 착하다고 믿는다"면서 희망을 놓지 않았죠.

하지만 비극은 찾아왔습니다. 1944년 8월, 은신처가 발각되면서 안네의 집필은 멈춥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안네는 수용소에서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했죠. 전쟁이 끝나기 불과 한 달 전이었어요. 하지만 "죽은 뒤에도 기억되고 싶다"던 안네의 소망은 기적처럼 이뤄집니다. 그녀의 일기는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인간의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혐오와 차별이 놀이처럼 번지는 요즘, 안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폭력 앞에서 나는 어떤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마음을 기댈 곳이 없을 때 안네의 일기를 펼쳐보세요. 자유를 꿈꾸며 펜을 들었던 한 소녀가 시대를 건너와 여러분에게 단단한 용기를 건넬 거예요. 
이진혁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