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인문학 이야기] 경쟁이 발전 이끈다고 믿은 철학자, 치열한 다툼 뒤 영원한 평화 꿈꿨죠

입력 : 2025.12.02 03:30

칸트의 역사 철학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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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 주도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영원한 평화가 가능할까요?

싸움이 시작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툼이 이어지다 보면 왜 싸우고 있는지를 잊곤 해요. 상대를 공격하는 데만 정신이 팔리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끝나도 마음속 앙금이 남는 경우가 많지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사진)가 살았던 시대 유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망자만 800만명이 넘었던 '30년 전쟁(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으로 시작된 전쟁)'의 후유증이 여전했던 데다가, 프랑스 대혁명의 기운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었어요.

잔혹한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 칸트는 인류에게 희망을 던집니다. 영원한 평화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칸트는 1784년 역사 철학과 관련한 짧은 논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을 발표합니다. 여기서 칸트는 '경쟁'을 오히려 바람직하게 여깁니다.

"자신이 키우는 양처럼 착한 사람은 가축보다 더 큰 가치를 자신에게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니 갈등과 악의적인 경쟁심, 소유욕과 지배욕을 우리에게 안겨준 자연에 감사하라." 경쟁은 힘들고 불편하지만 상대를 이기려 하면서 우리의 능력도 한껏 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죠.

칸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서로에게서 햇빛과 공기를 뺏기 위해 더 높이 가지를 뻗는다. 그러면서 위로 곧게 뻗은 숲이 만들어진다. 반면, 홀로 크는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가 자라며 보기 싫은 모습이 된다." 치열한 경쟁이 문명을 위대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설명한 말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절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죠.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나라 간 싸움을 준비하는 데 드는 힘과 시간도 엄청나지요. 전쟁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평화를 꿈꾸게 됩니다. 치열한 다툼을 통해 문명이 발전한 후, 마침내 사람들이 평화를 꿈꾸도록 역사가 설계되었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입니다.

칸트는 인류가 영원한 평화와 번영을 맞을 것이라는 내용의 '천년왕국설'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무역을 통해 유럽 전체가 점점 서로 의지하는 현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을 때, 상대의 파멸은 나에게도 치명적 손해가 되지요. 칸트는 전쟁을 충분히 겪은 인류는 이제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영원한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칸트가 영구 평화를 주장한 후 200여 년이 흘렀지만, 영원한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여정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