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크리스마스 대표작으로 발레단 수입 절반 책임진대요

입력 : 2025.12.01 03:30

호두까기 인형

미국 발레단들은 연간 수입 중 40~50%를 한 작품으로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바로 12월에 상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이에요. 뉴욕시티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지난 28일에 시작돼서 내년 1월 5일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두까기 인형'이 연말연시 공연장을 점령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으로 11~12월의 무대를 채웁니다. 오늘은 매년 12월 세계 공연장을 책임지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을 알아볼까요?

크리스마스 꿈속에서 펼쳐진 동심의 세계

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이 1816년 발표한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이 원작입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음악을 만들고, 러시아 국립 발레 기관인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를 총괄하던 마리우스 프티파가 대본을 만들었죠. 그리고 안무가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를 맡아 2막 3장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1892년 완성됐습니다.

1막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여자아이 클라라가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습니다. 클라라의 꿈에서 생쥐 부대와 호두까기 인형이 이끄는 장난감 병정들의 전투가 벌어져요. 클라라가 위험에 처한 호두까기 인형을 도와 생쥐 왕을 물리칩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로 변신해 클라라를 자신의 장난감 왕국으로 초대해요. 2막은 꿈속 환상의 나라에서 커피·차·초콜릿·사탕 요정과 꽃들이 춤을 선보이죠. 날이 밝으면 클라라는 꿈에서 깨어나 행복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습니다.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이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고 있어요. 2막에서 왕자(빨간색 옷)와 마리(클라라)가 이인무를 추는 모습이에요.
/국립발레단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이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고 있어요. 2막에서 왕자(빨간색 옷)와 마리(클라라)가 이인무를 추는 모습이에요. /국립발레단
1892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호두까기 인형' 첫 공연에서 사탕 요정(왼쪽)과 왕자가 춤을 추는 장면이에요.
1892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호두까기 인형' 첫 공연에서 사탕 요정(왼쪽)과 왕자가 춤을 추는 장면이에요.
러시아 국립 발레 기관인 마린스키 극장의 1860년대 모습입니다.
러시아 국립 발레 기관인 마린스키 극장의 1860년대 모습입니다.
차이콥스키가 반한 악기 '첼레스타'예요. 작은 피아노처럼 생겼어요.
/위키피디아
차이콥스키가 반한 악기 '첼레스타'예요. 작은 피아노처럼 생겼어요. /위키피디아
혹평 속에서도 빛난 차이콥스키의 음악

1892년 12월 18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 작품이 처음 선보여졌을 때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동화 같은 줄거리와 어린이 무용수의 등장이 당시 관객에게 낯설었대요. '발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남녀 주인공의 이인무(二人舞·두 명이 짝지어 추는 춤)가 극이 끝날 즈음에야 나와 청중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발레를 후퇴시켰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그럼에도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상적 선율과 멋진 오케스트레이션(오케스트라 악기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활용하는 법)이 돋보였습니다. 단순한 무용 반주를 넘어,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고 장면을 탁월하게 묘사했습니다. 음악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 것이죠. 특히 발레 사상 최초로 도입된 합창은 공연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합창이 나올 때 아름답게 눈송이가 흩날리는 연출도 한몫했어요.

타악기로 음악의 풍성함을 더하다

1891년 초 차이콥스키는 '호두까기 인형' 음악을 쓰던 중 가깝게 지내던 악보 인쇄 업자 표트르 유르겐손에게 편지를 써 어린이용 악기와 여러 종류의 타악기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4일 뒤 유르겐손은 악기 한 상자를 기차 편으로 보냈죠.

차이콥스키가 받은 악기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합니다. 트라이앵글, 탬버린, 캐스터네츠, 작은북과 큰북, 심벌즈, 우리가 '실로폰'이라고 부르는 글로켄슈필, 그리고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악기도 있었죠.

차이콥스키는 이 타악기들을 무대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1막 서곡에서는 트라이앵글이 종소리처럼 울리고, 행진곡에서는 심벌즈가 리듬감을 더합니다. 클라라의 오빠 프릿츠가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여러 장난감 악기가 활용됐어요.

2막의 디베르티스망(발레에서 줄거리와 상관없이 구경거리로 삽입하는 춤들)에서는 타악기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스페인의 초콜릿 춤에는 캐스터네츠, 중국 차 춤에는 글로켄슈필이 사용되고, 아라비아의 커피 춤은 탬버린 테를 살살 두드리는 소리로 표현되지요.

천상의 악기, 첼레스타

2막 디베르티스망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면은 '사탕 요정의 춤'입니다. 여기에는 '첼레스타'라는 악기가 사용돼요. 첼레스타는 '천상의'라는 뜻의 프랑스어 '셀레스타(clesta)'에서 이름을 따왔죠. 차이콥스키는 연주 때문에 미국으로 향하는 길에 프랑스의 한 악기 상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첼레스타를 처음 봤어요. 피아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는 더 작고,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금속 울림판을 때려서 맑은 종소리 같은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죠.

차이콥스키는 첼레스타의 영롱한 울림 소리에 반했습니다. 악기를 주문해두고 혹시나 다른 러시아 작곡가들이 알게 될까 봐 주인에게 비밀 유지를 부탁했대요. 미국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온 뒤 배송된 이 악기를 쳐보면서 어느 장면에 가장 어울릴지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호두까기 인형'에서 클라라를 환영하는 파티가 열리는 2막 디베르티스망 중 사탕 요정의 춤에 쓰기로 결정했네요.

버전에 따라 이름·줄거리가 달라진대요

초연 이후 오랫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작품이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대표 작품이 된 것은 1954년 뉴욕 시티 발레단이 안무가 발란신의 안무로 무대에 올린 이후부터입니다. 발란신이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겨냥해 꾸민 연출이 큰 인기를 끌었죠.

그동안 수십 차례 안무가 바뀌면서 오늘날 자주 공연되는 안무 버전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고 해요. 그중 마린스키 극장 버전과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버전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이 마린스키 극장 버전으로, 국립발레단이 볼쇼이 극장 버전으로 공연합니다. 버전에 따라 주인공 이름이 '클라라'에서 '마리'로 바뀌기도 하고, 호두까기 인형 역할도 무용수가 맡거나 목각 인형이 맡기도 해요. 줄거리가 달라지기도 하죠.

아이에게는 꿈을 심어주고, 어른에게는 동심을 일깨워주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 이번 겨울 이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발레 감상뿐 아니라 잠시 눈을 감고 타악기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김지현 '클래식을 읽는 시간' 작가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