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62년 전 식량난 해결하려 출시… 대표 'K푸드' 됐죠

입력 : 2025.11.27 03:30

라면

최근 체코 프라하의 한 식료품점에 각종 한국 라면이 진열돼 있어요. /유석재 기자
최근 체코 프라하의 한 식료품점에 각종 한국 라면이 진열돼 있어요. /유석재 기자
지난 22일 '김치의 날'을 맞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한 'K김치 & K라면 페스티벌'이 성황을 이뤘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특히 라면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한강 피크닉' 체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네요.

최근 체코를 방문했던 필자의 한 지인 역시 프라하 중심가의 한 식료품점에 들렀다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진열대 잘 보이는 곳에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육개장사발면 같은 온갖 한국 라면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죠. 이곳은 한국 식료품 전문점도 아닌 일반 가게였대요.

오늘은 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우리나라 라면이 어떻게 처음 생겨났는지, 그 역사에 대해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라면이 쌀보다 몸에 좋다'

"바로 이겁니다! 그야말로 혼분식 해결의 역군(役軍·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꾼)이군요." 1963년 9월,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삼양식품이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을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혼분식이란 게 뭘까요? 쌀에 잡곡을 섞어 먹는 혼식(混食)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인 분식(粉食)을 '책걸상'처럼 함께 일컫는 말이에요. 해방 이후 국내 인구는 계속 늘어났지만 쌀 생산량은 제자리걸음이었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부족했어요. 반면 밀가루는 미국에서 저렴하게 들여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습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들어선 군사 정부는 나라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재건 운동'을 펼치고 생활 개선 운동의 하나로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실시했어요. 학교에선 도시락에 잡곡을 섞었는지 확인하는 '도시락 검사'가 일상이었죠.

부족한 쌀 대신에 잡곡이나 밀을 먹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이제 라면이라는 새로운 분식이 출현한 겁니다. 정부는 "근대화된 식생활에 어울리는 음식"이라며 라면을 크게 홍보했어요. 지금 보면 상당히 이상하지만 '라면이 쌀보다 몸에 좋다'는 문구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설렁탕이 50원, 짜장면이 25원이던 시절에 라면 한 봉지 값은 10원이었습니다. 비싼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뭔지 몰라 먹기를 주저했고, "여러분, 이게 라면이란 겁니다!"라고 홍보하기 위해 거리에서 무료 시식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라면은 서서히 한국인의 입맛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국내 라면 소비량은 1967년 대비 1968년에 374%, 1969년 570% 증가했다고 해요. 실로 폭발적인 성장세였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고급 음식' 대접을 받았대요.


'한국식 빨간 국물'의 탄생

라면은 원래 중국의 '라몐(拉麵)'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건 그냥 수타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187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국물이 있는 국수인 '라멘'이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말하는 인스턴트 라면, 그러니까 '말린 국수에 분말 스프를 넣은 뒤 소비자가 물을 부어 즉석에서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이 나온 것은 1958년 일본에서였어요. 한국 출시 불과 5년 전이었죠.

삼양식품의 창업주인 전중윤은 이 무렵 일본에 갔다가 인스턴트 라면을 호텔에서 끓여 먹어본 뒤 '히트 상품이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요. 일본 인스턴트 라면 시장 2위 기업이던 묘조식품에서 제조 기술을 가까스로 전수받았습니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등 정부 실세를 설득해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입맛'이었다고 해요. 처음 나온 라면은 일본식 맑은 닭고기 국물이었는데 뭔가 밋밋했던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전중윤 회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고 합니다. "여보세요?" "나 박정희요." 라면을 맛본 대통령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던 겁니다. "기왕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춧가루를 넣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그래서 한국 라면 특유의 '빨간 국물'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인당 라면 소비 1위 베트남, 우리는 2위

라면 시장 초기엔 '풍년' '해피' '아리랑' 같은 8~9개 업체가 경쟁했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양식품과 롯데공업의 양강(兩強)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롯데공업은 1971년 출시한 국민 과자 '새우깡'이 대히트하면서 몸집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죠.

롯데공업이 1975년 내놓은 '농심라면'은 느끼한 맛이 적다는 호평과 함께 코미디언 구봉서·곽규석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를 타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롯데공업은 1978년 아예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꿨죠. 1981년부터는 매년 '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같은 히트 상품을 내놨습니다. 생활 수준 상승에 맞는 고급화와 다채로운 맛의 선택지를 제시한 다양화 전략이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85년 농심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다음 해인 1986년엔 라면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신라면'이 나왔죠.

좀처럼 인기 있는 신제품을 내놓지 못한 채 주춤했던 삼양식품은 2012년 '불닭볶음면'을 출시해 대성공을 거뒀고 '라면 한류'에 앞장서게 됐습니다. 한편 '진라면'을 만든 오뚜기와 '왕뚜껑' 회사 팔도도 시장에서 농심·삼양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면은 ①신라면(농심·3836억원) ②짜파게티(농심·2131억원) ③진라면(오뚜기·2092억원) ④불닭볶음면(삼양·1472억원) ⑤육개장(농심·1259억원) 순이랍니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라면 소비량은 약 1230억개였는데 이 중 한국에서 41억개를 소비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9.2개인데 베트남(81개)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해요. 2020년까지는 한국이 세계 1위였지만, 지난 2021년부터 베트남이 한국을 앞섰답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한국 라면의 수출액은 11억3000만달러(약 1조650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5% 상승했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