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전기 신호 기억하는 버섯으로 반도체 만들 수 있대요

입력 : 2025.11.25 03:30

버섯 반도체

컴퓨터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딱딱한 플라스틱 본체, 네모난 화면 등 전부 단단한 무생물이죠. 그런데 미래에는 살아 있는 생물이 컴퓨터의 핵심 부품이 될 수도 있다고 해요. 지난달 말 미국의 한 연구진은 버섯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반도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에서 전자 신호를 처리하고, 연산과 저장 같은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품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버섯이 반도체가 될 수 있는 걸까요?

광합성 못 하는 버섯, 유기물 분해로 영양 공급

우리는 버섯을 흔히 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버섯은 일반 식물과는 좀 달라요. 식물은 햇빛을 이용한 '광합성'으로 스스로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 수 있지만, 버섯은 그런 능력이 없어요. 대신 땅속이나 나무 속에 숨어 있는 버섯의 본체인 '균사체'가 낙엽이나 나무, 죽은 생물 같은 유기물을 천천히 분해해 영양분을 얻습니다. 버섯의 몸 대부분은 실처럼 가는 모양으로 땅이나 나무 속에서 넓게 퍼져 있는 균사체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버섯은 본체에 해당되는 균사체가 아니라 버섯의 번식을 위해 쓰이는 '자실체'라는 기관이라고 해요.

원래 버섯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아주 작은 알갱이인 '포자'에서 시작됩니다. 성숙한 버섯의 번식 기관인 자실체에서 나온 포자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가다가 적당한 흙이나 나무 위에 내려앉게 되는데, 포자가 실처럼 가느다란 어린 '균사'로 자라는 겁니다. 여러 균사가 서로 만나 연결되면 훨씬 튼튼하고 넓게 퍼지는 '균사체'가 만들어지죠.

그러다 비가 내리고 온도와 습도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균사체는 결정을 내린 듯 땅 위로 자실체를 밀어 올립니다. 새로운 포자를 만들고 퍼뜨리는 번식 단계에 들어간 것이죠. 버섯 자실체가 자라서 포자가 다시 퍼져 나가면 새로운 균사체가 태어나요. 겉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버섯이 더 눈에 띄지만, 유기물을 분해하고 자연을 순환시키는 숨은 주인공은 바로 균사체랍니다.

[재미있는 과학] 전기 신호 기억하는 버섯으로 반도체 만들 수 있대요
버섯 균사체로 만든 반도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은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에 표고버섯 균사체로 디지털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요.

연구진은 버섯의 균사체에 주목했어요. 버섯 균사체는 수분과 이온을 갖고 있어 전기가 잘 통해요. 또 수많은 균사가 서로 연결된 형태를 이용해 전기 신호를 조절할 수 있는데, 이것이 뇌의 신경망 활동과 닮았다고 본 거예요.

연구진은 우선 표고버섯을 키워서 균사체가 쭉쭉 뻗으며 자라도록 했어요. 다 자란 균사체를 동그란 디스크 모양으로 뭉쳐서 일주일간 말렸지요. 이렇게 만든 표고버섯 균사체 디스크에 전선을 연결하고, 다양한 전압과 주파수의 전기 신호를 흘려보내 반응을 확인했답니다.

그 결과, 연구진이 전기를 여러 번 흘려보낸 부분은 전류가 흐르는 걸 방해하는 '저항'이 점점 낮아지면서 전기가 처음보다 더 잘 흐르게 됐어요. 반대로 전기를 끄고 시간이 지나면 저항이 다시 높아졌대요. 표고버섯 균사체 디스크에 전기가 이전에 얼마나 흘렀는지를 기억하는 성질이 있는 거예요.

계산과 저장을 동시에 하는 반도체

연구진은 이런 특징이 반도체 '멤리스터'의 원리와 같다고 설명했어요. 멤리스터는 '메모리(Memory)'와 전기 저항 부품 '레지스터(Resistor)'가 합쳐진 말이에요. 멤리스터는 전기가 많이 흐르면 저항이 낮아지고, 적게 흐르면 저항이 높아지는 상태를 기억해요. 전원을 껐다가 켜도 이 기억이 유지돼요.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결과를 저장할 수 있는 특별한 반도체예요. 일반적인 반도체는 데이터를 계산·처리하고(시스템 반도체) 저장하는(메모리 반도체)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멤리스터는 이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할 수 있어요.

현재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 데이터를 잠깐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는 램(RAM)이라고 하는 기억 장치예요. 그런데 컴퓨터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사라져요. 그래서 우리가 문서나 사진 등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싶다면 하드디스크라는 기억 장치에 파일을 따로 저장해야 하죠. 이곳에 저장한 정보는 컴퓨터 전원이 꺼져도 남아 있어요.

만약 버섯을 컴퓨터의 기억 장치로 쓴다면, 정보 처리와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전원이 갑자기 꺼져도 데이터가 안전하게 남을 수 있는 겁니다.

버섯 반도체의 가능성

연구진이 만든 표고버섯 균사체 디스크는 1초에 약 5850번 전기 신호를 받아들여 저장할 수 있었어요. 저장된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도 확인했는데요. 최대 91%까지 정확하게 맞혔답니다. 실험에 사용한 전기도 최대 5V 이하로 매우 적게 들었지요. 휴대폰 충전기 수준의 전압만으로도 작동했다는 의미예요.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점도 강점이에요. 기존 멤리스터는 희토류 광물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드는 방법도 복잡해요. 반면 버섯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사용 후에는 자연적으로 분해돼 전자 폐기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아직은 버섯 반도체가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이 훨씬 낮고, 연구도 아주 초기 단계예요. 앞으로 연구진은 버섯 균사체를 더 많이 키우고, 이런 반도체를 모아서 실제로 사용할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해요.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정해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