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주인공 가족들은 생계부터 걱정했죠

입력 : 2025.11.24 03:30

변신

[재밌다, 이 책!]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주인공 가족들은 생계부터 걱정했죠
프란츠 카프카 지음|이재황 옮김|출판사 문학동네|가격 1만2000원

체코 출신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1915년 발표한 소설 '변신'은 시작 부분이 유명합니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꿈속이 아니라 정말로 벌레가 된 겁니다.

영업 사원 그레고르는 직장에 지각하게 됐지만, 익숙하지 않은 벌레 몸이다 보니 침대에서 벗어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아야 부모님과 여동생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애써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변신을 받아들이고 생계부터 걱정합니다. 집 안에 벌레가 있으니 하숙하던 이들도 집을 나가고 가족들은 불편함을 느끼죠.

여동생이 외칩니다. "내쫓아야 해요!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줬을 거예요." 방에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고생하던 그레고르는 어떻게 됐을까요? 기력이 다해 결국 방에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가정부 할머니는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죠. "옆방의 저 물건(그레고르)을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제가 이미 처리했거든요." 죽은 채로 방바닥에 말라붙은 그레고르를 가정부 할머니가 빗자루로 쓸어 치웠다는 겁니다.

가족이 슬퍼했을까요? 오히려 미래가 밝다고 느끼죠. 그사이 각자 새로운 일자리도 얻었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교외로 나들이 간 가족은 행복해합니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그레고르의 여동생)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소설에는 그레고르가 왜 벌레로 변신했는지 나오지 않아요. 그가 벌레로 변했다는 것만 제외하면 세상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지요. 가족들도 그레고르의 변신에 충격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죠. 현실과 거리가 먼 변신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입니다. '내가 만일 그레고르라면?' 또는 '그레고르의 가족이라면?' 이런 질문이 자꾸 떠오릅니다.

이 소설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사건 자체보다, 사람일 때에도 이미 벌레처럼 취급받던 인간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가족들에게 그레고르는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였고, 회사라는 기계의 부속품이었습니다. 세상은 그에게 일해서 돈 버는 역할만 요구했죠. 어쩌면 그레고르는 벌레가 돼서 그런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치에 어긋나며 이해하기 힘들고 의미를 찾기도 힘든 상황을 '부조리하다'고 말합니다. 카프카는 '변신'에서 단지 기괴한 사건이 아니라, 역할만 남고 인간성은 사라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그렸습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