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역대 조선 왕 위패 모신 곳… 피란 땐 신주도 챙겨 갔대요
입력 : 2025.11.20 03:30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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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묘 정전. 종묘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세종대왕 등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어요. /박성원 기자
유네스코는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유산이기 때문에 주변에 높은 건물을 세울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지요. 오늘은 종묘는 어떤 시설인지, 우리나라 역사·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왕조의 정통성 상징하는 종묘
"종묘사직을 생각하십시오!" 조선 시대 사극에는 신하가 왕에게 국가에 위험이 될 수 있는 행동을 멈추라고 조언할 때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종묘'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을 가리켜요. 조선의 왕은 왕조의 정통성(종묘)과 나라의 근본(사직)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원래 선비(사대부)는 4대 조상(고조)까지는 조상의 기일(돌아가신 날)마다 제사를 지냅니다. 그 윗대 조상들은 1년에 하루 날을 정해 한꺼번에 제사를 지내요. 그걸 '시제(時祭)'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교 국가인 조선 왕실은 다른 사대부와 격이 달랐기 때문에 500년 넘는 역사 동안 모든 왕과 왕비의 제사가 계속 치러졌죠. 종묘는 왕들의 조상님들을 모시는 장소였기에 더욱 특별했습니다.
종묘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가장 먼저 지어진 '정전'입니다. 여기에는 조선 초기 왕과 왕비 부부의 신주를 모시는 '태실'이 있었어요. 처음 종묘가 만들어진 1395년에는 정전에 태실이 총 일곱 개 있었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 부부를 모두 모셨지요.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신주도 종묘에 모셔졌습니다.
조선 왕조 길어질수록 종묘도 넓어졌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종묘에 모셔야 할 왕이 점점 늘어나 정전의 공간이 부족해졌습니다. 이에 세종 때 별관 '영녕전'을 새로 지었어요. 보관한 지 오래된 신주는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옮겼지요. 하지만 영녕전이 생긴 이후에도 정전이 가장 격이 높은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나 세종처럼 위대한 왕들은 계속 정전에 모셨답니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수도 한양을 집어삼켰고 한양에 있는 종묘 역시 모조리 불탔어요. 신하들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챙겨 피란을 떠났죠. 지금이야 '신주는 나무에 이름을 적은 팻말일 뿐이니 다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신주는 '나라의 보물'이나 다름없었어요.
전쟁이 끝난 뒤 종묘는 다시 지어졌어요. 1608년 광해군 때 종묘를 기존보다 더 넓게 재건했습니다. 정작 광해군 본인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면서 종묘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이후에도 현종·영조·헌종 대에 거쳐 신실을 계속 늘려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정전 건물이 좌우로 길게 뻗은 독특한 형태를 갖게 됐죠. 정전 7실로 시작한 종묘는 지금 정전 19실(왕 19·왕비 30), 영녕전 16실(왕 16·왕비 18) 규모가 됐답니다.
엄격한 기준 따라 신주 모셨대요
사망한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종묘에 신주가 모셔진 왕·왕비도 있습니다. 6대 단종은 문종의 외아들로 정통성을 갖고 왕이 됐지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겨 노산군으로 강등된 뒤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7대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왕으로 복위됐고, 단종의 신주도 이때 뒤늦게 종묘에 봉안됐지요.
태조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덕왕후는 태조의 총애를 받아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올렸지만, 첫째 부인의 아들이었던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신덕왕후는 왕후 신분을 박탈당하고, 사후 300년 가까이 지나서야 종묘에 신주가 모셔졌습니다.
조선에서 왕이 됐다가 문제가 생겨 폐위되면 '왕(王)'이라는 칭호를 빼앗고 신분을 '군(君)'으로 강등했어요. 그래서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사망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신주가 없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는 현재 각각 서울 도봉구와 경기 남양주시에 있어요. 마찬가지로 왕의 어머니여도 후궁의 신분이라면 신주를 종묘에 모실 수 없답니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에 따라 봉안된 왕·왕비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 바로 '종묘 제례'입니다. 지금도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려요. 행사 당일에는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행렬이 이어지고, 음악과 춤이 펼쳐지며 각 왕의 신주에 제사를 지낸답니다. 종묘제례는 2001년 종묘제례악과 함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종묘 건물뿐 아니라 제사 의식과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과 춤까지 500년 이상 보존된 것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