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뉴욕 뒤흔든 테러… 상처 딛고 첫 무슬림 시장 나왔대요
입력 : 2025.11.19 03:30
9·11 테러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시장 선거에서 인도계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하원 의원이 당선됐습니다. 7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맘다니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에요. 뉴욕에선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무슬림을 향한 편견과 두려움이 오랫동안 있었던 만큼, 이번 뉴욕 시민들의 선택은 국제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9·11 테러가 무엇이길래 맘다니의 당선이 이렇게 시선을 끌었을까요? 9·11 테러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가 미국 여객기 4대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펜타곤(국방부 청사)을 공격한 사건이에요.
이 테러로 약 3000명이 사망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20년 동안 긴 전쟁을 벌이기도 했죠. 오늘은 이 비극적 사건이 왜 일어났고, 뒤이어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9·11 테러가 무엇이길래 맘다니의 당선이 이렇게 시선을 끌었을까요? 9·11 테러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가 미국 여객기 4대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펜타곤(국방부 청사)을 공격한 사건이에요.
이 테러로 약 3000명이 사망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20년 동안 긴 전쟁을 벌이기도 했죠. 오늘은 이 비극적 사건이 왜 일어났고, 뒤이어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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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 시장 당선인이에요. 그는 최초의 무슬림 뉴욕 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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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가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한 모습.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범 19명은 미국 여객기 4대를 납치했어요. 이 중 2대는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1대씩, 1대는 워싱턴 DC의 펜타곤에 충돌했어요. 나머지 1대는 승객들이 저항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펜실베이니아주 한 광산에 추락했습니다. 원래 목표는 워싱턴 DC에 있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오사마 빈라덴이 이끈 알카에다는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인 1990년대부터 미국을 공격해 왔어요. 1993년에는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폭탄을 터뜨렸고, 1998년에는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을 동시에 폭파했습니다. 각각 6명, 200명 이상이 사망했어요. 다친 사람은 수천 명에 달했죠. 알카에다는 왜 이렇게 여러 번에 걸쳐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을까요?
그 배경은 1990년 8월, 경제 위기 상태였던 이라크가 '쿠웨이트가 석유를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어 이라크가 경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유엔(UN)은 이라크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미국·영국·프랑스·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한 다국적군이 군사 개입을 결정했어요. 이것이 '걸프전(1990~1991)'입니다. 전쟁은 1991년 2월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나 이라크군은 결국 쿠웨이트에서 철수했지요.
쿠웨이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다국적군에도 참여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의 다음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와서 방어를 도와줄 것을 공식 요청합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에는 이슬람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어요.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 군대가 신성한 땅에 들어온 것은 이슬람 율법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어요. 이때부터 미국을 주된 적으로 삼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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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날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펜타곤도 알카에다의 공격을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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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센터 테러 현장에서 확성기로 소방대원들을 격려하고 있어요.
9·11 테러 이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어요. 이 결정은 세계 질서를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특정 테러범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 조직은 물론 그들을 숨겨 주거나 도와주는 나라까지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군사 전략이었어요.
9·11 테러 한 달 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인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 지도부를 숨겨주자,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첫 단계로 군사 행동을 시작한 것이죠. 탈레반 정권이 빠르게 무너져 금방 전쟁이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탈레반 구성원들이 곳곳에서 계속 저항하며 싸우면서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전쟁은 20년간 이어졌습니다.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은 어떻게 됐을까요? 테러 이전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오사마 빈라덴은 9·11 테러 직후 파키스탄으로 도주해 약 10년 동안 숨어 지냈어요. 그러다 2011년 자신의 은신처에서 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사살됐지요.
테러와의 전쟁은 이라크로도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 살상 무기를 몰래 만들고 있고, 테러 조직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 전쟁(2003~2011)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중동 지역은 불안정해졌고,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는 등 국제사회에 큰 상처가 남았어요. 세계적으로 무슬림을 향한 두려움과 편견이 커졌고, 미국 안에서는 무슬림이나 아랍계 시민들이 불합리한 감시와 차별을 겪는 일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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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전쟁을 벌였어요. 사진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미군 모습입니다. /AFP 연합뉴스·위키피디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편견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커졌어요. 사람들은 테러를 일으킨 것은 이슬람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앞세워 폭력을 저지른 극단주의 세력이라는 점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지요. 20여 년 동안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남기며 미국 내에서도 '전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불러왔지요.
이후 미국에서도 정치에 참여하는 무슬림이 점차 늘며 사회 인식이 달라졌지요. 2006년에는 키스 엘리슨이 미국 의회 첫 무슬림 의원이 됐고, 2018년에는 일한 오마와 러시다 털리브 두 사람이 미국 최초의 무슬림 여성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이번에 뉴욕에서 첫 무슬림 시장이 나온 것 또한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니라, 9·11 테러 이후 두려움과 편견을 겪었던 미국 사회가 조금씩 변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